기자명 윤재홍 사진부장 (youni@skku.edu)

지난 1일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 이하:EU)과의 자유무역협상(Free Trade Agenda, 이하:FTA) 개시를 결정했다. 2007년 현재 유럽 27개국이 가입돼 있는 EU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4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경제권으로 우리나라와의 무역에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권 부총리가 협상 개시를 결정하며 “한­EU FTA는 우리나라가 개방과 세계화된 국가로 나아가는 주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듯, 언론에서도 앞다퉈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언론과 정부에서 쏟아내는 장밋빛 희망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한­EU FTA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지난 한­미 FTA에서 정부는 협상 관련 이해집단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도 않고 협상을 시작했다. 수많은 시민단체와 이해집단들의 의견은 협상에서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번 한­EU FTA에서도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에서 FTA, EU로 검색해 나온 4백36건의 기사에서 찾은 한­EU FTA와 관련된 설문·공청회는 단 2회이다. 그나마 열린 공청회는 찬성 측에 치우쳐진 패널에 항의하는 한미 FTA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을 경비원들을 동원해 끌어낸 후에야 진행됐다. 정부가 한-미 FTA처럼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하는 대목이다.

왜 노무현 정부는 이토록 FTA에 집착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권 말기에 하나라도 실적을 만들어 내기에 급급한 것이 아닐까? 지난 2004년에 타결돼 최종 비준된 한-칠레 FTA,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한-미 FTA가 국내 제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정부는 세계 최대의 경제단위인 EU와의 FTA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언론도 각종 추측과 연구소들의 보고서를 인용해가며 한­EU FTA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것인양 보도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한-미 FTA 최대 쟁점이었던 쇠고기는 EU가 겨우 자급자족하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묘사하면서, 현재에도 매년 2억5천만 달러어치씩 수입되는 돼지고기 관세가 폐지될 때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또 농업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수치 없이 막연한 추측만으로 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부, 언론 할 것 없이 전혀 변한 게 없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마치 FTA 중독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나라들과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우리 정부와 대다수의 언론은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비판 없이 장밋빛 희망만 쏟아내는 정부가 맺은 협상의 결과로 자칫 핏빛 미래에 살게 되지는 않을까. 정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