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지영 기자 (kekekel@skku.edu)

“대중성을 추구해야 할까, 전문성을 추구해야 할까”

학술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학문을 다루는 학술부의 특성상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딜레마에 부딪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물음에 언제나 한 가지 대답으로 일축한다. “학문으로 사회를 보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학문이란 것도 결국에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동물이라 일컬어지는 인간이 하는 학문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결부돼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학문에 대해 다루는 학술면에서 사회와 대중을 외면하는 기사가 실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문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일, 이게 짧은 학술부 기자 생활 중에 얻은 나의 학술기사 지론이다.

이번 학술면에서 다룬 생태주의도 이와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쓰게 된 기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는 구호를 어린 우리에게 심어주기 위해 선생님들은 얼마나 인고의 노력을 기울였던가. 너무나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환경보호에 대한 당위적인 말들로 인해, 기자는 환경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언제나 윤리적이고 원론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세계화로 전 지구가 너도나도 성장과 개발을 외치며 자연을 닥치는 대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생태주의는 성장중심적 세계관에 가장 효과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허무주의와 신비주의로 포장되던 생태주의가 성장논리의 사회에 직접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이념이었던 것이다. 이에 이번 학술면에서 생태주의를 조명하여 생태학으로서 개발논리로 얼룩진 현 사회 체제의 모순에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학문이 사회와 거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학문에의 연구는 고고하고 성스러운 길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회와 조화하지 못하는 실천성 없는 학문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다.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학문적 결과는 단순한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를 향한 학술면의 기사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서투른 학술부 기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