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어떤 결과이든 간에 그 이전에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전시회장에서 이런 단순한 원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오직 결과물이 드러나 보여지는 것이 바로 ‘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과정 그리고 감정의 흔적에 주목한 전시 ‘딜레마의 뿔 展’ 은 매우 이색적이다.

‘딜레마의 뿔 展’은 미로같이 연결된 6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각 방에는 6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각각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과정들을 살포시 풀어놓는다.

첫 번째 방에 전시된 작품들 중 단연 눈에 뜨이는 것은 꽤 큰 설치미술품이다. 전체적으로는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본체 위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고 트로트 ‘아빠의 청춘’도 흘러나온다. 그 특이함에 슬쩍 눈길만 주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건만 주변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들이 강하게 발길을 부여잡는다. 알아볼 수 없는 깨알 같은 글씨가 쓰인 고민의 흔적, 엉성한 스케치가 담긴 낡은 연습장, 그리고 친구로부터 격려 선물로 받은 화분 등 이 작은 퍼즐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이 작품의 한 부분으로 살아 숨쉬고 있음이 강하게 느껴진다.

다음 방에는 검게 칠해진 벽이 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검은 벽 같은데 가까이 가서 유심히 보면 뎃생 작품을 완성하던 도중에 마구 항칠한 것들이다. 벽 아래 위치한 낡아빠진 몽당 4B연필과 검둥이가 된, 손에 잘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지우개 조각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잘나가는 작가에게도 4B연필로 석고상을 그리며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지만 참으로 새삼스럽다.

어느 방에는 똑같은 트로피가 나란히 놓여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로 어릴 때 받은 상패를 이용해 만든 아동범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돋보이는 조각이다. 이 외에도 생계를 위해 미술학원 강사를 하는 자신의 세속적 모습을 풍자한 점토환조가 있고 첫 개인전의 환희를 표현한 판화가 있는 등 이곳에는 기존의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과정이, 고통이, 때로는 환희와 눈물이 있다.

이처럼 ‘딜레마의 뿔 展’에는 거창한 어떤 예술적 감흥이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곳에서 당신은 현재를 산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가치, 지금 하는 고민과 방황의 가치를 얻어갈 수 있으니 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기간:~5월 31일
△장소: 광화문 일민미술관
△입장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