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하나 기자 (hopehn@skku.edu)

집회 현장이나 시위 현장에 취재를 나가면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만난다. 지난번 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을 다른 집회 현장에서도 만나고, 등록금 투쟁했던 사람이 한미FTA 반대시위에도 있다. 통성명도 안한 사이인데도 얼굴만 보고 인사를 할 정도로 자주 마주친다.
시민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이다. 한미FTA 반대시위에 앞장섰던 사람이 성폭력 문제에서도 운동을 하고 있고 나아가 언론개혁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취재원을 구하는데 있어서 자꾸만 겹치게 돼 곤란할 때가 많다. 그만큼 시민사회에서나 대학생들에게서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활동하는 사람이 적다는 말도 된다. 

며칠 전에는 고려대 ‘다함께’에서 주최한 토론회를 취재를 갔다. 물론 학내에서 이뤄지는 작은 토론회였지만 실제로 모두 모인 사람은 채 15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교내에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벽보가 무색하게 모두 ‘다함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제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있는가’였다. 신자유주의에 동의하든 아니든 그것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고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얼마 전 있었던 노학연대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학번을 물으니 생각보다 07학번이 많았다. 어떤 이유에서 참여하게 됐냐고 물으니 “솔직히 의미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대학생으로서 이런 곳에도 참여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학생에게 어느 쪽에 섰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이상향이 절대적으로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옳은 답을 내놓고 옳은 행동을 하기보다는 세상이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과 틀에 맞춰지지 않은 다양한 발상들을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것이 어느 것이라고 해도 대학생이기에 용서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경험하고 현실과 맞부딪치려고 도전하는 대학생만의 특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