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속학과 BK21 연구교수 박인곤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평소에는 조용한 늦은 저녁, 연구실 밖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하고도 대학교 축제기간이다. 내 나이하고는 어울리지 않지만 슬그머니 딱딱한 책을 덮어두고 산책삼아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금잔디 광장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광장 여기저기에 펼쳐진 좌판에선 이미 술자리가 벌어지고 삼삼오오 짝지은 젊은 학생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홍조를 띤 얼굴들로 한바탕 신명나는 자리가 벌어져 있다.

광장 한쪽에선 시끄럽던 노랫소리의 주범인 락밴드가 김수철의 ‘젊은그대’를 말 그대로 방방뛰며 연주하고 있다. 아래에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은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고 하는 신나는 음악이 나올때 마다 단상의 가수와 함께 두손을 높이들고 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도 교복과 책가방을 맨채로 미래의 대학생이 될 꿈을 꾸며 멀찌감치서 몸을 흔들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가 다녔던 80년대의 대학교 축제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없었다’. 지금의 학생들과 같은 신명나는 노래도, 춤도 술판도 없었다. 단지 암울한 군사독재 정권하에서의 한서린 술잔과 힘없는 절규와 분노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8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하는데, 성대에 무용학과가 생긴 그 다음해로 기억한다. 그 해 축제기간에 조그마한 공문이 학교 몇군데에 나붙었는데, 무용학과 발표회가 어느어느날 금잔디 광장에서 열린다는 손으로 쓴 별로 주목받지 않을 만한 발표회 포스터였다. 그런데, 그날 금잔디 광장에 겨우 무용학과 1,2학년생들로 구성된 무용발표회를 보려고 모인 학생들은 3천명을 넘어서, 금잔디 광장이 꽉차버렸다. 심지어 도서관이 텅비어버려 물건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게 그때 겨우 1,2학년 무용학과 학생들은 예상치 않은 인파에 얼마나 긴장했을지 짐작을 해 보시라. 지금보다 더 넓었던 금잔디 광장이 꽉차서 자리가 없자 축제 마지막날 사용하려고 크게 만들어 놓았던 그 높은 차전놀이 조형물에도 몇 명이 기어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무용발표회를 보다 흥분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형물에서 학생이 떨어져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사고까지 벌어지고 나서야 겨우 발표회는 끝이 났었다.

이런 지난 일들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학생들이 축제기간에 마음껏 젊음을 즐기는 것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서럽기도 하다. 몇해전 축제 기간에 어느 남학생이 내게 와서 “교수님, 올해 ‘주얼리’가 우리학교에 왔는데요, 앞자리에 앉아서 보려고 몇 시간 전 부터 기다려서 정말 신나는 공연 보고 왔습니다… 그날 밤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라고 얘기해 주는데, 난 주얼리가 누군지 몰라 수업 끝나고 인터넷으로 주얼리를 검색해 보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도 있다.

사랑하는 성대 후배들이여……. 아무리 지금 취업이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마는, 그대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젊음이 있지 아니한가.지금은 고인이 된 현대 정주영회장이 80이 넘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이 현대를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지만 딱 한가지 ‘젊음’ 과는 바꾸겠다고 말했다 한다.

젊음은 무엇을 이미 이룩해서 좋은 것도 아니요, 안정적이어서도 아니며, 완숙함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젊음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사무치게 부러운 것이며, 실수하여도 부끄럽지 않음이며, 나이 들어 세상 때가 철철 넘쳐흐르는 나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낼 순수함의 상징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영악하다, 철이없다, 이기적이다  등등 아무리 비판하고 비난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순수함과 의로움의 가능성을 나를 포함한 기성 집단에게서 보지 못한다. 젊은이들에게서 무한한 순수함의 가능성을 본다.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이 가능성을 품고 자랑스런 성대인, 아니, 한국인, 더 나아가 세계인으로써 힘있게 정진함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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