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si』, 이혜란

기자명 이선영 기자 (sun3771@skku.edu)

틀어 올린 머리, 반쯤 감긴 눈, 큰 콧구멍… 그동안의 귀여운 카툰 에세이집 주인공과 달리 예쁜 것과 전혀 거리가 먼,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캐릭터. 그 이름은 ‘무시(moosi)’다. 작가 이혜란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 없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백조 무시를 통해 20대 중반의 치열한 고민과 사소한 즐거움을 담아낸다. 독특한 일러스트와 촌철살인의 입담이 느껴지는 75편 토막글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삶은 강요한다
그녀의 삶은 외롭다. 아버지, 엄마, 동생과 스물 다섯 해를 넘게 같이 살아왔지만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이라는 게임에 뛰어들지 않은 그녀에게 ‘이기는 것’과 ‘지는 것’에 대한 동생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사회에서 도태된 그녀는 가정에서조차도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무시는 이런 현실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특유의 독특함과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나무늘보 같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나무늘보는 치타보다 4백4십 배 느리게 살아가지만 그 덕에 각종 식물들이 기생하여 천적이 건드리지 않는다. 그녀 역시 동생보다 부지런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아서 오늘도 편하게 쉴 수 있다. 이처럼 그녀는 ‘남들은 달리는 것을 택했고 나는 멈추어 있는 것을 택했다’고 외치는 낙관주의자다.

나의 친구 무관심
자폐적인 삶을 살아가는 무시는 서로의 이야기에 유일하게 귀기울여주는‘무관심’이라는 단 한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다. 무관심은 다리가 불편해 담배가판대로 생계를 꾸려가는 아버지와 아픈 엄마,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산다. 무시는 약 냄새가 싫다고 놀려대는 아이들 때문에 당당했던 그녀가 얼마나 작아졌는지를 기억한다. 밀크셰이크와 도넛을 좋아하는, 네 살배기처럼 살아가는 그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무관심은 무시보다 세상에 더 적극적으로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이제는 식물적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나는 가난했고, 나는 착했으니까, 아무것도 될 수가 없었어” 하지만 무관심에게 현실은 여전히 무관심할 뿐이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다
그러나 무시의 시각은 좁은 방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365일 휴일 없이 하루 14시간 노동하는 지하철 역사 내 매점 여성 계약근로자, 언제나 강한 자가 승리하는 부부 관계, 모두가 외면하는 노숙자, 너무 가난해서 서류 통과 후 면접에 입고 나갈 변변한 옷조차 없는 빈민가 사람들… 그녀는 가장 작고, 가장 더럽기 때문에 채용하는 경우는 왜 없는가를 물으며 소외된 자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타인의 불행을 먹고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사는 삶이 뭐 그리 위대한가”

결국 그녀는 말한다. “서투른 관찰자 시점에서 서투른 주인공 시점으로 나는 가야 하리라. 나의 무뎌진 감각으로 감정이란 게 다시 되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가볼 작정이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삶은 흘러가지만 삶에는 차이가 없다고 외치며 그녀는 고도를 기다린다.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무시는 이십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근한 위안을 전하며 더 큰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