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트라우마. 요 근래 들어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단어다. 이 발음도 엘레강스한 외국어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길래 21C 한국의 곳곳에서 부르짖음을 당하는 것일까?

트라우마에 대해 알기 위해 기자수첩과 펜을 들고 찾아간 곳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장소의 연속이었다. 정신과 병원, 법원, 심리 상담소, 경찰서… 이런 곳들에서 목격한 트라우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외롭고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그 주인공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12시가 다 된 시각 어깨에 힘이 쭉 빠진 채로 지하철에 초라하게 올라탄 어느 집 아버지의 얼굴에서 본 적이 있고, 모의고사 날 재수 학원을 나오는 어느 남학생의 얼굴에서 본 적이 있고,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해가 지도록 어린이 집 앞에서 문 밖을 흘끔흘끔 넘겨보는 꼬마 아이의 얼굴에서 본 적이 있고, 언젠가 거울을 통해서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해 겪게 되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꼭 탈레반 납치나 비행기의 비상상태만이 트라우마를 가져다주는 건 아닐 듯 하다. 혼자인 것을 즐기는 척하면서도 타인으로부터 겪게 되는 충격적인 외로움이나 배신감 역시 현대인들의 트라우마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이 아닐까. 천재지변, 화제, 신체적 폭행, 교통사고 등 대형 사건사고에 의해 발생한다는 2007년 트라우마의 정의가 2, 30년 뒤에는 얼마나 더 좁아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