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바보 광대의 몸짓에 자지러진 60억 대중의 환호 속으로

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때는 19c. 세계 최고의 유랑극단인 보드빌쇼가 프랑스로 공연을 왔다. 공연의 흥이 한 층 무르익은 뒤 차츰 식어갈 때 즈음, 삐에로 분장을 한 어릿광대가 대나무 막대기(stick)를 들고 나와서는 실수로 자기를 찰싹찰싹 때리거나(slap) 다른 희극 배우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있다. 훤칠하게 큰 키와 가느다란 몸매의 대나무 막대기는 어릿광대의 작은 손 짓 한 번에도 휘청휘청 과장된 몸짓을 보이고, 땅바닥에 한 번이라도 닿을라치면 주책없이 크고 얄팍한 소리를 낸다. 끝내 이 우스꽝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고 배를 움켜쥔 채 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웃고 있던 한 관객이 입을 열었다. “Qu'est ce qu'ils fabriquent?(저기서 도대체 뭣들 하는 거야?)” 1910년대 들어 사회 풍자와 반역정신이라는 혼을 담고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된 이 어수선하고 방정맞은 개그, 바로 슬랩스틱 코미디이다.

거짓 없고 수식 없는 코미디의 진수

몸을 통한 ‘자기 학대’로 사람들을 웃겼던 이 무명의 묘기는 1910년대 미국의 배우 겸 코미디언이었던 맥 세넷이 자신의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면서 좀 더 뚜렷한 체계와 깊이를 가지게 된다.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오로지 몸으로만 드러나는 연기의 메시지는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특히 서민들 특유의 과장스럽고 소란스러운 익살연기 속에 은근슬쩍 녹여낸 상층 계급과 보수적인 사회에 대한 풍자가 서민과 노동자 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냈다.
이후 30년대 까지 로스코 아바클, 메벨 노맨드, 버스터 키튼, 워레스 비어리와 더불어 슬랩스틱 코미디계의 영원한 젠틀맨 찰리 채플린까지 주옥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언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찰리 채플린은 가장 많은 인지도를 얻고 뛰어난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던 슬랩스틱 코미디언. 언제나처럼 검은 신사복 차림에 검은 지팡이를 든 영국 젠틀맨 찰리 채플린이 1초가 멀다하고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몸 개그는 자본주의, 기계 사회, 독재, 제국주의, 인간 소외 등 굵직굵직한 당대 현안에 익살스런 웃음을 날려 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유성 영화의 등장과 함께 슬랩스틱 코미디가 설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유성영화의 등장, 스탠딩 개그, 험난한 사회 풍자의 길…위태로워지는 슬랩스틱의 입지

우리나라의 경우 영상 매체의 발달이 외국에 비해 늦었던 만큼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성기도 늦게 일어났으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됐다. 1970년대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MBC의 <웃으면 복이와요>는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장이었다. 남철 남성남 콤비의 ‘왔다리 갔다리 춤’처럼 古서영춘이나 古이주일하면 떠올리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얼굴 표정과 몸짓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 시기였던 것이다. 한국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이후 코미디언 세대인 심형래, 古 김형곤, 김미화에서 절정을 찍고 현재 최고의 입담을 과시하는 개그맨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 활동을 했던 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호황을 누린다. ‘한국 코미디=슬랩스틱 코미디’라는 공식이 당연했던 시기였다. 정통 코미디언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국민 코미디언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사회 풍자적 성격이 강한 코미디인지라 한국 코미디언 1, 2세대 중에서는 실제로 정치 활동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1C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슬랩스틱 코미디도 차츰 뒤처지기 시작한다. 소위 말 개그라고 불리는 스탠딩 개그의 등장과 단순한 웃음을 위한 단순한 몸 개그로 인해 점점 옅어져 가는 사회 풍자적 성격이 한국 슬랩스틱의 뒷목을 잡았던 것이다. 특히 후자에 근거해 일각에서는 “몸으로 때우는 저질개그 아니냐”식의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도 나왔다. 코미디언이 아니더라도 말재간이 있으면 누구나 개그를 할 수 있게 되기 시작했으며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에 큰 목소리를 낸다는 코미디의 정의가 무색해졌다. 오히려 지긋지긋한 현실 도피를 위해 순간의 일차원적인 웃음을 즐기는 코미디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삭막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타민

하지만 2007년 오늘, 슬랩스틱 코미디는 꿋꿋하게 그 위상을 잘 지켜가고 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선보이는 주요 개그 프로그램 3개가 모두 슬랩스틱 코미디를 궁극적인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 200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잠시 되짚어보면, 바보스러운 옷차림과 말로 홈쇼핑을 진행하던 모습이나 바보 같은 동네 청년 네 명이 연이어 나와 동요에 맞춰 이마를 쉴 새 없이 때리는 광경이나, 바보 같은 세 남고생이 권법이라며 선보인 우스운 행동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깊게 생각할 만한 메타포(은유)없이 몸을 통한 직설화법으로 순수한 어린 시절의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핵”이라며 “점잖은 줄 알았던 사람이 한 번 미끄러 넘어짐으로써 가면을 벗는 순간, 관객들은 고된 삶에서 인간적이고 친근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각박하고 계산적으로 변해가는 현대,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 모두에게 상큼한 비타민 같은 존재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도대체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