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다사다난했던 2007년 상반기.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참 많이도 일어났다. 소방 교육으로 소방차 사다리에 탑승하고 있던 두 초등생 어머니들의 추락,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과 치료를 위해 입원한 정신 병원에서 같은 층 남자 환자로부터 2차 성폭행을 당한 15세 소녀, 두 젊은이의 목숨을 잃은 채 지난 주 전원 석방으로 해결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생존자와 목격자로 하여금 평생을 따라다니는 일상의 악몽, 트라우마를 남기게 됐다는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전문 의학 용어로도 널리 알려진 트라우마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갖게 된 신체적,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뇌 속의 기억을 저장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상쇄하는 천두엽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정신 장애를 말한다.

트라우마를 야기할 정도로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는 △천재지변 △화재 △교통사고 △비행기·지하철·기차·선박 참사 △강간 △신체적 폭행 등이 포함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의 9·11테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쓰나미, 일본의 지하철 독가스 테러 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KAL기 폭파, 씨랜드 화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이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국가적 규모로 행해진 폭력이 양산한 민족적, 집단적 트라우마가 특징적이다.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산하 심리건강연구소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쟁 직후 30여 년 동안 일어났던 독재 및 군사 정권의 거국적 폭력이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화된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저항 세력은 무조건 폭력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무시 풍조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 밖에 일본에 대한 잠재적인 배타 의식도 35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가 만들어낸 민족적 트라우마라는 의견이다.

트라우마의 구체적인 증상은 크게 과민반응, 충격의 재경험 그리고 감정적 혼란으로 나누어진다. 일단 트라우마 환자들은 ‘거북이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처럼 사건을 연상시키는 아주 작은 것 내지는 거의 관련성이 없는 것을 보고도 사건과의 연결 고리를 머릿속에 만들어 냄으로써 민감하게 반응한다. 트라우마 환자들은 이러한 과민반응에 선행해서 충격의 재경험을 겪기도 하고 과거에 경험했던 끔찍한 사건에 의해 형성된 잠재적 불안으로 꿈 혹은 환각과 같은 비현실적 상황에서 충격을 재경험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 피해의식은 정상적인 생활에 장애를 가져다주며 극단적인 경우 약물 복용, 자해 행위로 까지 혼란된 감정이 표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트라우마 환자의 고통은 비교적 심각한데 비해 국가나 사회의 지원 및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트라우마 환자의 경우 때에 따라서는 사건 발생 후 수년이 지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건의 공소 시효가 지났거나 정신 장애와 사건과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화된 치료 시스템을 접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쾌한 의학적 분석이 힘들다는 점도 미비한 트라우마 환자 치료 시스템에 기여한다. 기존의 트라우마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단, 치료하는 미국의 ‘트라우마 레지스트리 시스템’이나 트라우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 아워(사고 직후 1시간) 동안 분업화된 의료업무로 신속하게 치료를 하는 ‘트라우마 센터’처럼 트라우마 환자들만을 위한 특화된 병원 체계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뒤르케임은 그의 자살론을 통해 “트라우마에 의한 자살과 살인은 개인이 아닌 사회가 저지르는 행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환자들을 위해 한국 사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도 한국의 트라우마 환자들은 방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