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여름 방학은 오락가락하는 비와 함께 정말 무더웠다. 이런 날씨가 우리를 더욱 짜증스럽게 만든 데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피랍 사건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개학과 때맞추어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납치되었던 이들도 대부분 생환하여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은 아직 우리에게 여진을 남기고 있다. 정부의 협상 방법이나 구상권 청구 등에 대한 논란도 그렇지만, 피랍자들의 기자회견장 소식부터 그리 시원스럽지 않다. 이들에게 달걀을 던져 모욕을 주려 했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당당하기를 요구한 교회의 신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나 40여일간의 죽음의 공포에서 갓 벗어난 피랍자들 혹은 그 동안 이들과 함께 애태우며 걱정하였던 국민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모습이다. 사실 이처럼 상반된 격렬한 반응은 인터넷 곳곳에서 더 적나라한 모습으로 확인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쉬운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신앙에 대하여 쉽게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향한 선교 역시 조심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를 위한 봉사는 서로가 소통하고 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애당초 불가능하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 말하기조차 쑥스럽지만, 자신의 믿음만큼 상대방의 믿음도 소중하다. 그런데 가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상식조차 무시될 때 인간 사회의 신뢰 자체가 깨어져버린다. 어쩌면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은 종교를 달리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불신에서 시작되었고, 이 안타까운 상황이 국내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까지 가세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아집과 독선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일면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학문(學問)’ 곧 배움과 물음은 곧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하지 않는가! 간혹 이 학문이 남을 이기기 위한 혹은 남과 다르기 위한 수단으로 경직될 때도 없지 않으나,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선생과 학생 모두 서로에게 묻고 배우는 과정일 따름이다. 지난 주부터 새로 시작된 신학기, 상호 열린 대화로서의 수업을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의 기반을 마련해보고 싶다. 이것이 가을의 삽상한 바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시원스럽게 소통해 줄 것이다. 최근의 가슴 아픈 일 앞에서 대학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우리 대학인의 사명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