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영어에서 자주 쓰는 ‘thank you’라는 말이 어떤 경우에는 마치 신통력을 지닌 듯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내가 런던대학에서 한국어문학을 강의하고 음성학을 연구하느라 영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윔블든 테니스선수권대회에 가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1986년 7월 2일이었는데, 거기서 이름난 선수들, 북어처럼 마르고 기다란 나브라띨로바(Martina Navratilova), 긴 머리에 왼손잡이 미남인 르꽁뜨(Henri Leconte), 그리고 바위처럼 단단하고 장대하지만 앳된 선수 베커(Boris Becker, 당시 19세)의 묘기를 가까이서 직접 보았다.
윔블든 정구장에는 코트가 100여 개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경기는 주로 중앙구장(Centre Court), 제1 구장, 제2 구장에서 열린다.  중앙구장은 원형극장처럼 생겼다. 경기장은 노천이지만 그 둘레 관람석에는 지붕이 있다. 입구가 여덟 개 있는데 관람객은 좌석번호에 따라 정해진 입구로만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수백 명, 수천 명이 출입해도 별로 혼잡이 없다.
모든 좌석이 다 차고 입석까지 지팡이 하나 더 들어갈 틈이 없이 만원이 된다. 묘기가 나올 때마다, 점수가 바뀔 때마다 탄성이 나오고 환성이 터진다. 그러나 써브를 넣을 때는 절대 적막이 필요하다. 이때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면 주심이 ‘Be quiet, please!’라고 점잖게 말한다. 그래도 무슨 소리가 더 들리면 다시 ‘Quiet, please!’라고 하는데 대개는 여기서 완전히 조용해진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우에 사람들이 몹시 흥분해서 두 번이나 조용하라고 했는데 아직도 소음이 남아 있으면 이번에는 아주 명료한 음성으로 “Thank you!”하는데, 아, 그 위력! 최후통첩 같은 이 한 마디에 전구장 모든 관람객이 물을 끼얹은 듯, 쥐 죽은 듯 완전히 고요해 진다.
1877년(빅토리아여왕 시대) 제1회 윔블든 국제대회를 치르고 지금까지 120여 년 간 계속 되어 온 이 대회에서 주심이 말하는 이 “Thank you!”의 의미를 제대로 다 설명해 놓은 사전이 있을까?  나는 정구도 못하면서 비싼 돈 내고 윔블든 풍속도나 보러 갔다가, 거기서 사전에도 설명이 없는 이 절묘한 “Thank you!”의 용법과 그 오묘한 함축적 의미를 체험으로 배웠다. 윔블든에는 테니스말고도 전통과 질서와 품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