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현 기자 (kjhjhj1255@skku.edu)

서둘렀다. 서울역까지 가는 발길을 자꾸만 채근했다. 기차 시간이 늦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올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무서웠다. 서울역까지 가는 발길이 나도 모르게 더뎌졌다. 무법지대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를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러 가는 취재원은 ‘여성’ 노숙자였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그러안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기로 했다. 취재 수첩도 없이 맨 손으로 무턱대고 서울역 광장을 들어섰다.

그렇게 하룻밤을 가출 여학생으로 보냈다. 엄마뻘, 이모뻘, 동생뻘 되는 여성노숙자들과 함께. 취재원에게 말 붙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그녀들은 그녀들대로 서로를 두려운 존재로 바라봤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이 고통스럽고 힘든지, 물어보고 싶은 말은 천만 보따리나 됐는데 그녀들은 낯선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 주위를 2시간이나 방황한 후에야 겨우 말 한마디를 붙일 수 있었고 나의 르포취재가 시작됐다.

여성노숙자, 그녀들은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 아니, 보호를 거부한다. “남편도 날 버렸고 친척도 날 버렸어. 사회보호? 서울 미관 유지한답시고 감옥 같은 수용소에 몰아넣는 게 보호라면 노땡큐야” 몇 날 며칠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제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고 얻어 보고 싶은 것이 그녀들의 속사정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수용되는 공간이 아닌 살아있다는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이 여성노숙자들에겐 너무나 그립다.

그녀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그 세계의 테두리는 여성노숙자 스스로가 쳐놓은 최소한의 안전망이었다. 그 속에서 그녀들은 암팡진 존재감을 찾고 홀로서기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수십 개의 쉼터보다 단 한곳의 자립센터가 절실한 이유다. 더 이상 동정의 시선은 던지지 말자. 면전에서 혀를 차지도 말자. 우리의 예상보다 그녀들은 더 다부지다. 손을 맞잡고 무릎만 일으켜 세워만 줘도, 그 때부터 여성노숙자들의 삶은 180도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