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수 강사 (유학동양학부)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하늘의 제왕 천지왕이 이 세상의 혼란덩이인 수명장자를 다스려 보고자 땅에 내려왔다 돌아가는 귀로에 인간세상의 아름다운 처자 총명아기와 사흘 밤낮을 지낸다. 신과 인간의 첫 결합이다. “자식을 낳거든 대별과 소별이라 이름을 짓고 나를 만나겠다고 하거든 이것을 건네주시오.” 꿈처럼 바람처럼 사라진 낭군의 자취와 박씨 두 알만이 이젠 총명부인인 그녀의 손에 남겨진다. 과연 총명부인은 쌍둥이 아들을 낳고 대별과 소별이란 이름을 그들에게 준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버지를 묻자 총명부인은 천지왕과의 인연을 말해주고 박씨를 전한다. 아들들이 기뻐하며 박씨를 심자 곧바로 싹이 터 넝쿨이 솟아오르며 그 넝쿨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대별과 소별은 박 넝쿨에 의지해 하늘로 오른다. 하늘에 오른 형제는 활쏘기 시험으로 천지왕의 아들임을 증명한다. 천지왕은 이제 자신의 아들이 분명한 대별과 소별에게 다른 과제를 준다. 꽃씨 두 개를 주며 더 아름답고 튼실한 꽃나무로 키운 사람에게 이승을, 꽃나무 경쟁에서 진 사람에게는 저승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겠노라고.

대별과 소별은 저마다 정성을 다해 꽃나무를 가꾼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소별의 꽃나무는 형의 것처럼 생생하지를 못하고 시들했다. 승부를 결정하기 전날 밤 소별은 몰래 화분을 바꾼다. 그러니 이제 소별의 꽃나무가 훨씬 튼실하고 아름답게 자라있을 터. 그래 결국 소별이 이승을 다스리고 대별은 저승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런 비하인드스토리 덕에 이승은 권모와 술수로 어지러운 세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나. 한편 저승으로 간 대별은 자신의 바뀐 운명에 화를 내기는커녕 선량히 살다 죽은 영혼의 안식처를 주고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부귀를 누린 자는 죄 값을 치르도록 하여 저 세상의 질서 유지에 완벽을 기하였다는 이야기. 

우리 창세신화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의 대강이다. 우리 신화는 서양의 신화에 비해 턱없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지라 좀 장황하게 신화의 내용을 소개했다. 꽃씨를 심도록 하는 신화. 얼마나 인간적이며 소박하고 한편으로는 장구한 발상인가.

여하튼 창세신화에서부터 권모와 술수가 등장하는 걸 보면 이건 인간세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건들인 모양이다. 더구나 술수가 이긴다는 내용에 이르면 오늘 우리가 만나는 장면에서 속속 발견되는 부적절한 승자들의 무용담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님을 알게 한다. 인간들의 나약한 심성과 욕심이 만나는 자리에서 빚어지는 장면들. 우리의 이성은 불공정 게임의 당사자인 소별에게는 비판의 화살을, 정당함을 지켜낸 데다가 동생의 불의까지 덮어주는 아량을 지닌 대별에게는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나의 이해가 얽혀있는 생활로 내려오면 욕심은 소별의 승리에 주목하기를 채근한다. 이성과 욕심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벌어져 있다. 

사람이 교육을 권장하고 옳은 것에 대한 담론을 견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간극을 좁혀보고자 하는 자정장치가 아닐까. 그래서 이성은 간 데 없고 욕심만을 앞세운 승리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져서 더 아름다운 게임도 이 세상에는 있다는 것, 그런 것도 바라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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