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훤 교수(학부대학)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며칠 전 10월 9일은 우리 문자인 한글이 반포된 지 561돌이 되는 한글날이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로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된 것은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 끝에 적힌 "正統十一年九月上澣"의 기록 때문이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세종 28) 10월 9일경이므로 1945년부터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처음부터 ‘한글날’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도 아니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주축이 되어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와서야 비로소 명칭이 ‘한글날’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문자사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진보된 문자 가운데 하나이다. 문자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한글은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발생적인 측면에서 한글은 제작 시기와 원리, 과정 및 제작자가 분명한 문자이다.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보면 그것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개별 문자의 발생적 근거가 뚜렷한 문자는 문자사에서 그리 흔치 않다. 

두 번째로 한글은 형태와 발음 모두를 독자적으로 창안한 음소문자이다. 다시 말해서 한글은 어떤 특정 문자에 뿌리를 둔, 그들을 차용하고 변모시켜 만든 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이 문자적 계보가 없이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 이외에도 한글의 과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성은 한글이 발음 기관에서 자형을 본 떴다는 사실이다. 이는 제작자의 상당한 언어학적 지식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음소문자이며 한자, 로마자 등 어떤 계통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한 존재가 바로 한글이다.

세 번째로 한글은 구성과 배열상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자모음자 28자를 동일한 층위에서 만들지 않고 기본자 ㄱ, ㄴ, ㅁ, ㅅ, ㅇ을 먼저 만들고 나머지 글자들은 획을 덧붙여 만드는 이원적인 조직을 택한 것이다. 또한 한글은 일반 음소문자들이 취하는 나열식 배열을 취하지 않고 음절 단위의 조합식 배열을 취하고 있다. 각 자모를 일렬로 배열하는 로마자의 방식(ㅂ-ㅗ-ㅁ / ㄱ-ㅏ-ㅁ)을 따르지 않고 몇 개의 자모를 음절단위로 묶어 배열하는 ‘모아쓰기’ 방식(봄, 감)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아쓰기 방식은 어떤 음이나 자유롭게 표기할 수 있는 자모문자의 기능을 살리면서 뜻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음절문자의 장점도 동시에 살린 탁월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들은 한글을 ‘자모음절문자(Alphabetic syllabary)’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국내 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 학자들의 언급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콜롬비아 대학의 레드야드 교수는 그의 저서〈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발성 기관과 문자의 형태를 연관시키는 개념이나 그것을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을 살펴볼 때,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문자사상, 이러한 사실은 또 다시 찾아 볼 수가 없다. (중략) 실로 이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자학적 사치(grammatological luxury)이다.”

글 마감 시간에 쫓겨 몇 자 끼적이고 나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큰 딸애한테서 휴대전화로 쪽글이 왔다. “오늘 느즐거 같애. 만이 죄송~죄송. 용서해 주삼.” 말문이 막혀 허허 쓴 웃음이 나왔다.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셨다면 통탄하실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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