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근무가 끝나고 돌아온 집 안이 뭔가 이상합니다. 새 것으로 갈아야겠다고 생각한 세면대의 비누는 빵빵해져 있고, 부엌 찬장 안에 넣어둔 통조림도 그동안 먹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네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죠?

영화 ‘중경삼림’ 속 정복경찰 633 (양조위 분)의 눈에 비로소 우렁 각시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 자신을 떠난 애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633의 우렁 각시는 바로, 그의 단골 샌드위치 가게 종업원인 아미(왕정문 분). 까칠까칠할 정도로 짧은 머리칼에 선머슴 같은 표정과 행동 그리고 언제나 마마스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는 그녀는 별 꿈 없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를 마시러 오는 633에게 언제부터인가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된 아미는 그의 애인이 남기고 간 편지 봉투 속에서 633의 집 열쇠를 발견하게 되죠. 고민 끝에 아미는 이별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633을 위해 그의 공간 곳곳에 남아 있을 전 애인의 흔적을 조금씩 없애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귀엽고 앙큼한 무단 주택 침입이 시작되죠.

영화 속에서 언제나 아미를 춤추게 만드는 그 노래 ‘California Dreaming’은 60년대 미국의 히피문화를 대표하는 곡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상향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지만 춥고 우울한 도시에 얽매여 있다는 가사 내용처럼 아미 역시 의미 없고 변화 없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막연하게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꿈도 계획도 없는 자신의 불안정한 청춘이 한 없이 부끄러워짐을 아미는 느끼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633의 정식 프로포즈에 대한 답으로 1년 후 오늘로 예약된 비행기 표만을 남긴 채 캘리포니아 행 비행기에 오르죠. 그리고 1년 후, 아미는 제복이 잘 어울리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633을 찾아옵니다. 사랑이 사람으로 하여금 꿈을 갖게 한다니, 20대의 사랑은 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력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아무런 꿈도 없어 사랑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당신이라면 먼저 자신의 청춘 앞에 당당해져 보시는 게 어떨까요? 엔딩 장면에서 어딜 가고 싶냐는 아미의 물음에 “당신 가는 곳으로 하겠어요”라고 말했던 633처럼, 당신의 사랑도 꿈을 이룬 당신의 모습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