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사람들은 왜 그토록 권력에 쉽게 순응하는가. 사실 우리는 스스로가 권력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분명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침해하는 사회의 각종 권력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이같은 현상을 ‘자발적 복종’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지만, 권력자들은 이런 본성을 찾지 못하도록 교묘한 수단을 이용한다. 이 때 개인의 자유를 망각하게 하는 수단은 ‘교육’과 ‘유희’다.
로마 시대 독재자들이 개최한 성대한 축제는 이런 ‘유희’적 측면이 강한 권력 유지의 도구였다. 당시 독재자들은 천민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한 후 축제를 통해 그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천민들은 독재자가 자선을 베푼다고 착각해 그를 찬양했다. 당시 독재자가 개최한 축제에 정신이 팔린 로마시대 천민의 모습은 권력자들이 제공한 ‘즐거운 유희’에 빠져 자유를 망각해버린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일례로 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3S(△sports △sex △screen) 산업을 통해 지지기반을 다지려 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권력자들은 교육을 교묘하게 이용해 개인들로 하여금 자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이전에는 권력자들이 자유에 대해 아예 가르치지 않아, 어두운 밤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이 찬란한 햇빛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처럼 개인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들 주위에 자유를 논하는 수많은 수단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찾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각자 조금씩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사회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교육은 개인들로 하여금 독재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상납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만들어 자유를 찾으려 시도조차 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것들은 생각을 마비시켜 무력한 삶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어쩌면 강제적인 폭력을 통한 지배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독재자의 ‘교육’과 ‘유희’로 인해 자유를 잊은 개인들은 결과적으로 부당한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 해답으로 간단명료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개인의 자각’을 제시한다. 자유에 대한 자각만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군주, 즉 권력자의 성격을 ‘불꽃’에 비유해 자발적 복종의 과정을 설명한다. 불꽃은 작은 불티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땔감을 던질수록 더욱 많은 것을 태우며 강해진다. 땔감이 없다면 불은 스스로 꺼져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권력이라는 불길에 물을 끼얹을 필요조차 없다. 오직 불 스스로 타들어가도록 놔두면 되지만, 개인들은 오히려 불꽃에 스스로의 권리를 바치고 태워버려 그것이 더 강해지고 파괴와 약탈을 일삼도록 도와준다. 『자발적 복종』이 쓰여진 지 400여년이 지난 지금, 혹시 우리는 지금도 권력자의 뜨거운 ‘불길’에 맞서기는커녕 그들의 ‘땔감’으로,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