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 인터뷰

기자명 김지현 기자 (kjhjhj1255@skku.edu)

권영길 후보. 그는 한국 진보정치의 산 증인이었다. 그로 하여금 진보정당은 기틀을 닦았고 노동자들은 조직을 갖추게 됐다. 그만큼 인터뷰 내내 보인 권 후보의 몸짓에는 여유와 노련미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조해보였다. 그에게 있어서도, 한국 정치에 있어서도 이번 대선은 '진보'의 향방을 결정지을 고빗사위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농민, 서민들을 어떻게 진보의 테두리로 보듬을 것인가. 그리고 정작 권 후보 자신은 '진보적'인가.
20년이 넘는 유장한 세월을 진보정치에 몸담아 온 그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진보대통령을 꿈꾼다. 여기, 그의 진보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고 냉정하게 바라본 이야기를 풀어냈다.

권영길을 돌아보다

■ 정치에 무관심한 대학생 유권자를 어떻게 정치 참여로 이끌어 낼 것이며 왜 대학생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보는가
대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취업에 쏠려 있다. 그러나 취업문제는 곧 ‘정치’다. 따라서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것 또한 대학생들로 하여금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한 요소다. 이들의 정치참여를 이끌어내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권영길과 민주노동당은 △서민경제 살리기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철폐 △청년실업 해소방안의 해법을 갖고 있다. 입시지옥에서 간신히 탈출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예외 없이 청년실업과 등록금 인상 문제에 봉착하고 있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것이 대학생의 현실이잖나.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만이 확실한 대안이다.

 ■ 자신에게 대학은 어떤 공간이었는지, 또 대학생활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답해 달라
고교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농대로 진학하자고 설득할 만큼 농민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농대에 입학하고 보니 교과가 기술·실무적으로만 짜여있고 학우들의 의식 수준도 높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교수들은 훌륭한 농학자만을 요구했고 학교는 농민 운동을 하려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학 공부에 흥미를 잃긴 했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면서도 농민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래서 농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참여하는 대중적 성격의 동아리를 조직해 농촌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3번의 대선 내내 똑같은 후보가 나오는 것은 자칫 기득권 지키기라는 수구적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상쇄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가 있나
“또 권영길이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 권영길, 역시 권영길”이라고들 말한다. 권영길은 창당부터 원내 진입기까지 상승세를 이끌어왔고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원내에 진출시켰다. 이번에는 진정한 집권을 위해 출마한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시킬 자신이 있다. 권영길이 당의 혁신과 변화를 위해 제2창당 수준의 열정과 노력으로 당원·국민과 함께 해 나가겠다.

■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다수의 서민들은 권 후보를 외면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며 이를 어떻게 타개할 생각인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체념상태는 극에 달했고 여기서 비롯된 막연한 기대가 군중심리와 결합돼 이명박 후보에게 쏠리고 있다. 이 표심을 권영길에게 끌어오기 위해서는 체념을 분노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지난 11일 1백만 민중대회를 조직한 것이다. 전국 노동자와 농민들의 분노가 가시적으로 결집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현 정권이 대회를 막긴 했지만 진보정권을 고대하는 서민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성공적인 기회였다고 평한다.

■ 서민경제를 건설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권 후보의 공약들은 대체로 기득권의 반감을 살만한 사회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정책실현에 있어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설득할 것인가?
이명박 후보는 세금이 엄청나게 들어갈 장밋빛 공약을 내세우면서 세금을 줄이겠다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대운하와 무상의료·무상교육, 어느 것이 더 절실한가.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61%가 부유세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더 많은 소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이를 공약실현에 사용한다면 국민들이 선택할 것이다.

권영길, 교육을 말하다

■ 대학이 더 이상 ‘학문의 상아탑’ 구실을 하지 못하고 ‘취업 준비학교’로 전락한 현실 속에서 대학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 국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립하면서 대학은 경쟁 일변도의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 또한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취직이 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대학이 오롯이 학문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대학의 높은 등록금 의존도,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등록금 인상률, 대학당국의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등록금 결정과정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교육재정을 GDP 대비 7%까지 확충해 2012년 기준으로 25조 원을 확보하겠다. 이 돈으로 등록금 상한제와 저소득층 면제 정책을 병행해 돈 걱정 없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들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한 달 평균임금 수준으로 대학 등록금 상한제를 실시하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등록금을 면제해 주려면 5년 동안 5조4천7백억 원이 필요하다. 1년에 1조 원 정도의 추가예산이 들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들의 의지가 없어서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3불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단적으로 말하자면 3불 정책은 사회의 기본 가치로서 유지돼야 한다. △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의 허용은 결국 ‘가진 자들만을 위한 대학교육’을 낳을 뿐이다. 살인적인 입시와 가정을 위협하는 사교육비 문제는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가 잉태한 것이긴 하지만 해결의 한 주체는 분명 ‘대학’이다. 따라서 사회적 책무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대학이 자율성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 예컨대 대학간 협약에 의해 학생을 함께 선발하고 학점교류를 보다 활성화하면서, 전학 및 전과도 허용하고 공동학위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 현행 입시제도 폐지와 대학입학 자격고시 도입, 대학 졸업자격 단일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대학 교육의 질과 대학생의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설득할건가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우리 청소년들의 잠재력은 매우 훌륭하다. ‘학력이 떨어진다’, ‘하향평준화다’ 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국제학력평가에서 세계 3위권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충분히 높다는 뜻이고. 나는 1974년 고교 평준화 실시 이후 사교육비, 학벌, 교육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봤다. 이에 비춰봤을 때 지금이야말로 ‘대학을 평준화할 때’라고 생각한다.

■ 학벌중심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학벌중심 사회질서 재편’ 정책을 내놨다. 세부정책에 있어서 소위 명문대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만 19세에 치르는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판나는 신분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권영길은 학벌·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이러한 학벌사회를 해소하겠다. 취업원서의 ‘학력기재란’을 법으로 금지하고 ‘공직자 할당제’를 실시해 특정 학벌, 지역 출신자가 공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해 반발을 잠재울 것이다.

권영길, 사회를 말하다

■ 권 후보는 “서민들이 법조인이 되기 위한 문은 더 좁아졌다”며 로스쿨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로스쿨법이 통과된 현 시점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지위세습 등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로스쿨이 ‘국민을 위한 사법서비스 제고’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논의가 상당부분 진척된 상황에서 계속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해 로스쿨 설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로스쿨 정원이 적어도 4천 명은 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고, 학비 절감을 위한 정부의 지원 등 진입 장벽 해소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특정 대학에 로스쿨을 인가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 내 대학간 연합의 형태 또는 로스쿨 입학 추천권한의 동등한 배분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달라
현 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갈지(之)자를 그리며 오락가락했다. 우선 남북회담을 6자회담에 종속시켜 미국의 입맛대로 논의가 굴러가도록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남북관계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또한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하나 실질적인 통일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진지하게 통일을 논할 수 있는 남북기구를 설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남한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한다.

■ 무상의료공화국, 무상교육공화국 정책은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국가의 재정적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추가세원 및 부과금으로 42조 6천억 원, 예산 절감과 감액, 전환으로 31조 3천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총 73조 9천억 원을 재원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역으로는 △부유층 증세 16조 2천억 원 △양극화세 16조 2천억 원 △탈세·탈루 징수 6조 2천억 원 △국방비 감액 7조 원 등이 있다. 74조 원에 달하는 재정으로 충분히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 권 후보는 ‘5년간 비정규직 4백만 명의 정규직 전환’과 ‘국가고용책임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구체적인 실현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이에 덧붙여 청년실업에 대한 또 다른 대책을 듣고 싶다
1천만 고용 안정 시대를 열어 가겠다. 맹목적인 ‘묻지 마’ 성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도록 하겠다. 우선적으로 △현행 비정규직법을 철폐하고 △공공부문에서 50만 정규직을 만들어내며 △비정규직 전환기금을 설치해 강제력을 띠도록 하겠다. 또한 3백만 고용 창출과 3백만 고용 유지, 4백만 정규직 전환을 통해 국민의 희망과 행복을 보장하겠다.

■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에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육아휴직 전면 실시, 산전휴가 이후 원직복직 의무화’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안정되지 않으면 어떠한 차별 해소나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도 불가능하다. 강력한 근로감독과 법 규정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명예근로감독관 제도를 도입해 감독관이 일상적으로 부당노동행위가 있는지 관리감독하고 바로 시정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 정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유권자의 의지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