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스 카로『플라스틱 피플』

기자명 고해정 기자 (aqua509@skku.edu)

거실에 쌓여있는 청구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음만 다급해 진다. 아침부터 쉼 없이 일하고 퇴근 뒤 잠시 짬을 내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삶을 연기하고, 뒤돌아 다시 아르바이트를 간다. 내 인생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어느 날이었다. 얼굴이 창백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완벽한 인생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 남자는 지금 내 인생에 연기자를 파견해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 않게 지금 내 인생에 필요한 사람을 찾아냈다. ‘나는 지금 남자친구가 필요해. 남자친구 있는 친구들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처음 뵙겠습니다. 피귀렉에서 파견된 사람입니다. 이름은 마음에 드는 것으로 붙여주세요” 마음에 든다. 내가 일전의 남자에게 의뢰했던 키 크고, 쌍꺼풀이 없고, 유머감각까지 있는 사람이다. 간단한 목례를 하고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오늘 처음 본 이 남자는 어느새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돼 있다. 친구들의 부러운 눈초리가 꽤 마음에 든다.

그 남자와 하루에 한 두시간을 같이 보낸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약한 시간이 끝나면 그는 다시 모르는 사람인 듯 돌아간다. 모든 이에게 나의 남자친구라고 알려져 있는 그는 실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다.

그를 만나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면 받을 수록 집에 쌓여만 가는 것은 거액의 청구서다. 이 돈을 내지 못하면 더 이상 친구들 앞에 그를 데려갈 수 없다.

청구액을 내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사실 남자친구 같은 건 필요 없었어. 난 그저 나 혼자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행복했는데. 여자 친구들하고 이야기 하는 시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무엇 때문에 나는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나의 인생’, 나만의 인생이기에는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사회는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나 크다. 속물적인 이 사회가 오늘따라 버겁다. 오늘도 나는 나를 둘러싼 이 사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