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표준 FM '격동 50년' 오성수 PD

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MBC 방송센터 라디오 방송국. ‘ON AIR’라고 써 있는 붉은 불빛의 전광판 앞에서 한 남자가 지휘하듯 부지런히 양 손을 움직이고 성우들의 목소리 억양도 그의 손놀림을 따라 변화한다. 고성과 웃음이 반복되길 몇 차례, 남자가 “오케이!”라고 외치자 비로소 스텝들은 고개를 뒤로 젖힌다. 24년을 지나온 역사에 한 페이지를 더하는 순간이다.

김용민 기자(이하:김) ‘별이 빛나는 밤에’,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다가 시사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프로그램으로의 환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계기는 무엇인가?
오성수 PD(이하: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 소년으로 이름을 날렸었다.(웃음) 그랬기 때문에 오락 프로그램보다는 드라마에 관심을 가졌고 소원대로 MBC 입사 직후 ‘집념’이라는 라디오 드라마로 데뷔했다. 이후 94년부터 3년간 ‘격동 50년’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05년에 다시 ‘격동 50년’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온 것일 뿐이다.

 김: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라디오 드라마의 위세는 크게 축소돼 있었다.
 오:
그렇다. 내가 입사했을 때에는 MBC에 10개가 넘는 라디오 드라마가 있었지만 지금은 단 한 개밖에 없다. TV도 모자라 뉴미디어까지 넘치는 지금, 라디오 드라마가 그들에 대항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다른 음악 프로그램보다 제작비는 많이 들지만 오히려 효과는 더 낮아서 본사의 지원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김:제작 여건도 처음 ‘격동 50년’을 맡았을 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오:
기술적인 측면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제작환경은 훨씬 나아졌다. 라디오 방송의 생동감을 살리는 음향기기들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고 스튜디오 환경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정보가 생명인 우리 프로그램에게 인터넷의 발달은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40대 초중반에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는 열정에 많이 의지했는데, 지금은 열정보다는 노련미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갓난아기를 다루듯 세심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를 돌보다 한눈을 팔면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라디오 프로그램도 녹음할 때 집중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완성도 자체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기기가 발전해도 제작진의 역량에 달려있는 사항이다.

김: ‘격동 50년’은 라디오 드라마라는 특성도 있지만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라는데 그 가치가 있다. 정치라는 민감한 사항을 다루는 데에 따르는 부담감은 없는가?
오:
왜 없겠는가. 특히 3공화국 시절을 다룰 때 일간지의 한 기자로부터 소송도 당했다. 이런 소송이 들어오면 제작진측이 전적으로 불리하다. 주변인들의 증언과 회고록을 토대로 드라마를 구성해도 막상 당사자가 발뺌을 하면 우리로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패소했지만 우리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정식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처음에는 이런 항의를 받았을 때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다.(웃음)

김: 이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계속 ‘격동 50년’의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오:‘
격동 50년’이 다른 프로그램보다 골수 애청자가 많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싶다. 워낙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역대 성우들의 이름까지 외우는 애청자의 전화도 가끔 걸려오는데 그럴 때마다 뿌듯하다. 또 어떤 분은 ‘격동 50년’으로 역사공부를 하신다고도 하고…… 큰 원동력이 있다기 보다는 이런 소박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방송할 때도 희열을 느낀다. 비록 문민정부시절이었지만 광주사태를 방송했을 때 큰 보람이 느껴지더라. 원래 ‘격동 50년’이 내 맘대로 방송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프로그램 아닌가.

김:앞서 말한 것과 달리 좌절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
내가 설계한 기획이 외부 압력에 의해 좌절 됐을 때 실망했었다. 과거에 삼청교육대와 관련해서 기획을 잡았는데 상층부에서 방송을 막았다. 이에 대해 분노도 느꼈지만 애청자들에게 온전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김:벌써 24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온 ‘격동 50년’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격동 50년’을 이끌고 싶은가?
오:
나도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해 19년 동안 몸담았던 성우를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목소리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형식이 변해도 대한민국 현대사를 청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사명감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격동 50년’은 라디오를 통해 현대사에 대한 옳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방송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