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연금, '용돈'아닌 '권리'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기자명 김지현 기자 (kjhjhj1255@skku.edu)

임종민(26) 씨는 8년 전 교통사고로 뇌성마비 2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이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얻고 난 후 그는 깊은 절망과 좌절에 잠겼다. 그 와중에도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휴일도 없이 일을 하러 나가는 부모님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취업을 할 나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을뿐더러 원래 집안 살림이 넉넉한 편도 아니어서 종민 씨는 재활치료도 마음 편히 받을 수가 없다. 그는 하루 빨리 장애인연금제도가 도입돼 부모님의 고생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백57만2천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52.1%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에 가입되지 않은 장애인도 73%. 앞선 사례의 임종민 씨처럼 연금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장애인이 무려 4명 중 3명꼴이라는 얘기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 계측 시 장애로 인해 소요되는 추가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있는 용돈수준의 장애연금조차 국민연금 가입자가 되기 이전에 장애를 입은 사람은 지급대상에서 아예 배제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장애인연금제 도입이 매 정기국회 때마다 안건으로 올라오고 선거공약으로 내세워지지만 여전히 이 제도는 표류 중이다.

장애연금제 도입, 산 넘어 산
그 핵심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권이 장애인연금을 ‘어떻게’ 지급할 것이냐는 지점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 지급기준은 크게 ‘장애정도’와 ‘소득수준’으로 갈리는데 1~2급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화원 의원의 ‘중증장애인기초연급법안’과 소득수준에 따른 급여를 골자로 한 장향숙 의원의 ‘장애인소득보장법안’이 벌인 한판 승부는 이런 논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장향숙 의원은 “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에게 연금을 선지급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 의원의 법안과 분명한 평행선을 그었다.

그러나 실제 연금 대상자인 장애인계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투쟁단은 “정 의원안은 기본적인 틀은 갖추었으나 경증장애인을 배제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장 의원안은 지급급액이 현행 장애수당보다도 낮은 수준이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장애인계 전체의 합의 없이는 어느 쪽도 지지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방향의 가닥을 분명히 잡지 못하니 장애인들의 공감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법안의 장기표류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장애인연금의 독립운영 여부, 제도 시행 시의 재원조달방법 등에 있어서도 여전히 ‘완전한’ 연금제도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복지 선진국의 든든한 연금제도
최근에야 연금제도의 구체적인 설계과정이 논의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복지 선진국의 경우는 장애인연금제도가 국민기초연금과 함께 초기부터 확실히 정착돼 있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주 목표로 둔 일본 △장애인의 재활을 위해 사회급여체제의 각 담당기구가 고유 업무 외에도 특수재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 △장애연금 수급자의 수급액이 낮을 경우 보충연금도 추가지급하는 스웨덴 등은 이차적·보충적 소득보장제도도 보유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구의 평균 소득 수준이 비장애인 가구의 85%에 이른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 뇌성마비3급의 박현중(32) 씨는 “우리나라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노령연금 등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논의된 여러 법안들이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외국처럼 장애연금을 ‘수당’이 아닌 ‘권리’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다 현실적이고 심층화된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생존의 횡단보도 건너기’ 시위가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은 차례로 횡단보도를 돌며 생존권으로서의 장애인연금제 도입을 촉구한다. “이제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들의 외침. 이제는 결실을 맺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