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조각가 이원택

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얼음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어린아이를 다루는 아버지의 손이다. 망치와 전기톱으로 매섭게 혼을 내다가도 금방 머리를 쓰다듬듯이 부드러운 손길로 얼음을 달랜다. 얼음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의 얼굴에도 흐르는 한 방울의 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한 예술가의 열정이 작업장을 뜨겁게 달구고 그 속에서 얼음은 성숙한 예술로 태어난다.

 

김용민 기자(이하:김) 지금은 얼음조각가지만 식품영양과를 나왔고 호텔조리사로 일했던 적이 있다. 다소 특이한 경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얼음조각가 이원택(이하:이)
86년 아시안게임 당시 나는 조선호텔에서 조리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전국이 축제 분위기다 보니 호텔에서는 매일같이 연회와 행사가 열렸고 수많은 얼음 조각이 연회장에 전시됐다. 그래서 얼음조각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얼음이 가진 투명한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때 ‘이것이 내가 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후 시간을 쪼개가며 얼음조각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직원을 모아 91년에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얼음조각에 뛰어들었다.

김:지금도 얼음조각 교육을 받기는 쉽지 않은데 그 당시에 어떻게 얼음조각 기술을 익혔는가?
이:순수 독학이었다. 21년 전, 전국에 얼음조각가는 1백 50명도 채 안됐고 그마저도 호텔 행사 얼음조각만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라 예술적으로 깊이 있게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청계천 책방을 돌아다니며 관련 외국 서적을 구했고 월급을 타자마자 카메라를 구입해 조각할 대상들을 찍었다. 지금같이 인터넷이 있는 시대에는 불필요한 작업이지만 그때는 얼음조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발로 뛰며 얻어야 했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입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김:조각에도 나무, 돌, 청동 등 많은 재료가 있는데 왜 하필 얼음이었나?
이:
아까도 말했지만 얼음은 다른 재료에서 볼 수 없는 투명함이 있다. 유색은 금세 질리지만 투명함은 잘 질리지 않는다. 크리스탈이나 다이아몬드같은 투명한 광석은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보석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얼음은 온도에 따라 자태를 바꾸고 결국엔 사라진다. 그렇게 다른 재료와는 달리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스스로 떠날 줄 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김:녹는다는 것은 매력일 수도 있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한계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래가지 못할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에 대해 허무감이 들 것 같기도 한데
이:
실제로 얼음조각 입문 후 5년 동안은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되니까 얼음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녹는다는 것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더라. 오히려 얼음의 특성이 나의 예술혼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만약 내가 만든 조각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작품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다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저번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꼭 허무함만 남는 것은 아니다.

김:21년 동안 수많은 얼음을 조각했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이:7년 전에 해인사의 요청을 받아 글자 하나가 직경 1m인 30m 길이의 팔만대장경을 조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해인사는 대장경 보존 대책을 세워달라며 정부와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었고 만일 대비하지 않으면 대장경도 얼음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부가 이후 대책을 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걸 보고 ‘내 작품이 대장경 보존에 한 몫 했구나’하는 뿌듯함을 느꼈다. 

김:얼음조각은 예술이라기보다 기술자가 만드는 신기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이:아무래도 얼음조각이 호텔 안의 장식품 정도로만 머물러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얼음조각을 할 땐 칼 같은 세밀한 도구보다 망치나 전기톱 같은 우악한 도구를 더 많이 사용하고 무거운 얼음덩이도 옮겨야 한다. 그러나 얼음조각은 온도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힘을 쓰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미세한 손길이 얼음조각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만큼 충분히 예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그렇다면 얼음조각이 당당히 예술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이:
당연히 대중들에게 좀 더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얼음조각을 즐길 수 있는 자그마한 아이스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험이 쌓이고 대중들에게 얼음조각이라는 예술이 널리 퍼지면 대규모의 야외 아이스 테마파크를 세울 예정이다. 지금은 비록 작은 박물관에 불과하지만 내 목표가 차근차근 이뤄지게 된다면 얼음조각이 하나의 예술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