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정상에 선 사람에게는 마치 백야가 일어난 것처럼 밤낮으로 화려한 햇빛이 비춰지고 밝은 미래만이 앞에 펼쳐질 듯 합니다. 하지만 햇빛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어둠이 찾아왔을 때 크게 당황하게 되죠. 항상 눈앞을 장식하던 모든 것이 흑막에 덮이기 때문입니다.

정미경의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에 나오는 P가 그렇습니다. 고 3때부터 전교 1등은 물론이고 명문의대 수석 합격, 해외에서 잘나가는 외과의사로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죠. 학창시절부터 P를 부러워했던 유명 영화평론가인 ‘나’는 완벽했던 P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있는 오슬로를 방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린 것은 정상에서 더 오를 곳이 없기 때문에 좌절하고 있는 P와 그를 지켜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M이었습니다. ‘인생의 정상에 오른 그들은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의 상황에 다소 당황하게 됩니다.

어느 날 P와 M이 한 바탕 싸움을 벌이고 난 뒤, M은 ‘나’를 어디론가로 데려가는데요. 그 곳은 바로 뭉크의 <절규>가 있는 뭉크 박물관입니다. M은 ‘나’에게, 음주 집도라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P가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 과정과 술 때문에 언제나 고성이 오가는 부부사이 등을 고백합니다.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절규>를 찾았다는 말과 함께요.

왜 M은 고통 속에서 또 다른 고통인 <절규>를 찾았을까요? <절규>의 화가인 뭉크의 일생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고 평생을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린 뭉크는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절규>에 녹여냅니다. 실제로 <절규>의 주인공은 현실을 피하려는 듯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 그 뒤로는 불규칙한 곡선의 물과 하늘을 나타냄으로써 혼란을 표현하고 있죠. M은 이런 <절규>의 주인공에 자신을 씌워 뭉크와 인생의 고통을 공유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뭉크가 이런 불행에도 불구하고 82세까지 살았다는 점입니다. 작가 정미경씨는 “질기게도 오래 산 뭉크의 삶이 M을 붙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말을 통해 <절규>가 M을 버틸 수 있게 한 힘이 됐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남의 불행이 절망 속에 빠진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된다는 것, 이상하지만 어느 정도 통하는 묘한 명제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