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춰, SCV
춤을 춰, SCV
  • 성대신문
  • 승인 2008.01.22 17:57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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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수작 - 황진주(국문04)

1.
  천 구백 구십 칠년, 한국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마의 그 1997년 말이다. 그 이전까지 건축자재 도매업을 하는 아버지는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형편이 넉넉했고, 엄마는 화가였고, 나와 서준이는 군것질을 망설여 본 적이 없었다. 딱, 천 구백 구십 칠년까지 그랬다. 언제부터가 중세인가, 언제까지가 근대인가가 아직도 논쟁거리가 되는 데 비하면 역사구분 문제에 있어 한국경제는 위대한 역사학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한 셈이다. 말 그대로 1996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1997년에는 발생했으니까. 국민들이 나라에 금을 팔고, 옆집 아저씨는 해고당하고, 앞집 언니는 취직을 못하는 문제야 그렇다 치고, 나와 서준이는 1997년부터 군것질을 망설여야 했고 엄마는 조그만 미술학원을 차렸고 집에는 아버지를 찾는 전화들이 부쩍 늘었다. 1996년과 1997년은 그렇게, 명백히 다른 시대였다.

‘V.I.P’가 Very Important Person 이라는, 그 허무하리만치 쉬운 영단어 조합마저 아는 듯 모르는 듯 했던 열 네살의 나조차, International Monetary Fund 라는 고차원적 영어를 알 수밖에 없던 시절. I.M.F가 I'm fired의 약자라는 고급 유머를, 그러니까 Fire가 ‘불’이라는 의미의 명사로서가 아니라 '해고하다'라는 동사적 용도를 갖고 있다는 지식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농담을 온 국민이 공유하던, 누구나 고차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그 시절에 뻥 뚫린 온 국민의 가슴을 야금야금 채워주던 뭔가가 그래도 있기는 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 축구팀의 98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 열기가 아저씨들의 빈 지갑을 대신했고, 서태지가 아닌 H.O.T가 여학생들의 군것질 욕망을 잠재워줬으며, 남학생들과 청년들의 도전 정신을 발산시켜 준 것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이었다고 한다, 만은 대체로,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였다. 나는 십대 여학생이었지만 H.O.T에 질질 짜며 방송국 경비와 육탄전을 벌이면서까지 견뎌내야 할 세상을 가질 만큼 시대에 예민하지 못했다. 천 구백 구십 칠년에 나는 갓 중학생이 되었고, 초등학생 때도 그랬듯이 얌전히 책상에 앉아있었다. 온 세상의 어른들이 무릎을 발발 떨며 세상을 들쳐 업고 있었을 때 내가 할 일은 나름대로 내게 소유권이 있던 손톱만한 금가락지를 엄마가 구청에 가져가는 걸 조용히 응원해주는 자잘한 애국과, 공부였다. 천 구백 구십 칠년이 되어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공부하면 잘 될 것이라는 희망만은 말 그대로 위아래가 꼴딱 뒤집힌 그 세상에서도 전혀 동요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자식새끼가 의사선생님이 되어 기울어가는 집안의 등불이 되어줄 거라는 희망 말고는 남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난 뭐,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와는 상관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천 구백 구십 칠년은, ‘그런 시절’ 이었다.

그 때는, 천 구백 구십 칠년에서 더하기 십 년이 되는 날이 올지 몰랐다. IMF의 풀네임을 알기 위해 네이버를 두드려야 하고, ‘fire’가 ‘해고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꼬맹이들을 보는 날이 오리라고는, 십년 전의 모두는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마침 찾아온 대선에서 IMF를 임기 내에 탈출하겠노라고 장담하는 후보의 너무나도 뻥 같은 공약을 지랄 염병이십니다 라고 씹으면서도 살포시 그 이름 아래 도장을 찍어주던 어른들의 마음이 정권교체를 이뤄낸 해이기도 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할아버지는 정말로 4년 만에 IMF에 진 빚을 다 갚았다. 일단은 그랬다. 아홉시 뉴스 앵커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드디어 IMF에서 벗어났습니다.”라며 울듯이 이를 꼭꼭 씹으며 뉴스를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있어야 할 우리까지 일어나 덩실 덩실 만세춤을 추었다. 그 날 사람들이 만세를 추며 혹시라도 그려보았을 십년 후의 자신들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아이엠에프가 뭐예요?” 라고 묻는 꼬물꼬물한 자식 내지 손주들의 깜찍한 질문을 받으면 여유로운 웃음 한 번 지어주고 “그런 시절도 있었단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말이다...”라고 시작되는, 금이빨을 파내 구청에 팔아 아말감으로 교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우 고기를 씹으며 들려주는 모습 정도?

그렇게 야금 야금 십년이 지나더니 지금 이천 칠년의 어른들은 ‘IMF’를 묻는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쪼오끔 더 살기 뻑뻑했을 때 있다. 염병헐 그래도 그 때는 은행 이자라도 많이 쳐줬지. 제길.” 이라고 대답하며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미국산 뼈 있는 쇠고기의 대 공습에 부들부들 떨고 있고, 게다가 설상가상, 나 역시 십년 새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취직을 못했던 앞집 언니’가 바로 지금 내 모습이란 말이다. 십년 전.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되는 줄만 알았던 ‘그런 시절’의 우리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 왜, 천 구백 구십 칠년의 어른들이 저지른 바보짓을 감당해야 하는 거냐 하는 억울함을 토로할 마당도 없이, 나는 여기 저기 원서를 던지다 결국 월세가 없어 고시원을 나왔고, 동시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클릭 두 번으로 휴학 신청을 했다. 겨우 한 학기만 남았으니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한탄이라도 할라치면 삼성 엘지 에스케이 한화 현대 두산을 모두 합격해서 선택해 들어갔다는 엄마 친구 아들의 이야기가 심심하면 한 번씩 회자돼 ‘능력 있는 놈은 된다’는 결론이 나와, ‘스펙이 짜잘한 능력 없는 청년 실업자’로 날 보는 어르신들의 시선에 나는 여지없이 찌그러져야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 그렇게 치자면 저도 할 말 있습니다. 건넛집 복부인은 IMF때 경매로 풀린 부동산을 모아들여 지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죠? 퇴직한 김 과장은 그 때 부도난 기아차 주식을 몽창 사더니 지금 돈 깨나 만지고 있다죠? 천 구백 구십 칠 년의 세상에도 그렇게,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었지 않았습니까. 어디에나 남들은 빵도 못 먹고 산다며 울 때 그럼 고기를 먹어요 라고 우아 떠는 사람들은 있는 법입니다. 그게 순전히, 빵도 못 주워 먹는 사람의 잘못인가요. 천 구백 구십 칠년을 죽지 않고 버텨내신 존경스런 여러분들 대답해 보세요. 그게 누구 잘못이냐구요. 네?

소리 질러봤자,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이천 칠 년에, 그러니까 천 구백 구십 칠 년 하고도 강산이 한 번 더 바뀐 세월동안, 건축자재 도매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건축 자재는 부도수표가 되어 날아갔고, 미술학원을 차렸던 전직 화가인 엄마는 ‘김밥만세’의 주인이 되어 붓을 만지던 손으로 중국산 찐쌀로 만든 김밥을 썰어 천원에 팔고 있고, 아홉살 서준이는 교대를 지원하는 고 3 수험생이 되어 있으며, 나는, 그러니까, 취업준비생, 이라는 언제 끝날지 모를 직함 하나를 달고 초라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고시원을 정리한 가방 두 채를 이고 오던 날 집에는 아버지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맞고게임을 치고 있었다. “흔들어!” “고!” 하는 여자의 요성이 그다지 넓지도 않은 텅 빈 집안을 울리고 있었다. 저 왔어요 아버지, 하자 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로 “어 그래.” 했다. 쌌다! 스피커 속의 여자가 유난스레 야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음 게임을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이후 나는 침대에 고치를 튼 벌레처럼 들어앉아 하루 종일 잤다 깼다를 반복했다. 깨어있을 때는 질병처럼 잠이 왔고, 잠을 자고 있을 때는 죄책감 때문에 눈이 뜨였다. 하루 24시간이 그처럼 팔자 좋게 흘러갔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바깥에는 아주 규칙적인 시간대에 최소한으로 정해진 소음이 들렸다. 나는 침대에 공벌레처럼 숨어 누운 채 내가 취업 준비생 명찰을 달게 된 그간 집이 어떤 모양새로 흘러왔는지 소리만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집안도 한 때는 델몬트 오렌지 주스나 마데카솔 연고 선전에 나오는 가족처럼 오손도손 예쁘게 세월을 공유하며 자라나는 모습을 꿈꾸지 않았을 리 없으나 지금, 대화보다는 변변찮은 생활소음으로 서로의 존재감을 파악하는 작달만한 연합전선 쯤이 되어 있었다.

난 언제나 졸렸고, 또한 언제나 불면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밤이 몇 번이고 지난 다음 나는 밖에 나가서 의미 없이 여기저기를 걷다가, 새벽에도 불을 켜고 있는 가게들 무리에서 24시간 운영되는 엄마의 김밥집을 보았다. 엄마는 통유리 앞에 앉아 천원짜리 김밥을 말고 있었다. 계란, 부추, 당근, 햄, 단무지를 얹는 엄마의 손놀림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또박했는데 엄마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이나 맞은편에 서서 김밥을 싸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술에 휘청대는 젊은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엄마 곁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니 너가 왠일이냐?” 하고 묻는 엄마의 얼굴에 약하다만 미소가 보였다. 김밥을 쌀 때의 표정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나는 매일 밤 가게에 나오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그래라 말아라 말이 없었지만, 그 날 이후로 출근 도장을 찍는 날 말리진 않았다. 난 행패부리는 밤손님들 틈바구니에서 엄마를 지켜줄 만큼 건장하지도 못했고, 사실 그런 용도로 남자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이미 고용하고 있기도 했다. 요리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고, 도움이 된다면 접시 나르기 정도이지만 밤에 그 목적으로 사람 하나가 더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한마디로 난 가게에서도 있으나 마나였다. 그래도 엄마는 김밥을 말면서 가끔 날 보고 웃었다.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2.
  엄마 가게의 형편을 파악하는 데는 사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깡깡 얼어 붙은 식재료를 교체하는 엄마의 손길이 머뭇머뭇 하다는 것도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돈이 들고 나고 모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일절 내게 꺼내지 않았지만 손바닥만한 가게의 자금 문제는 누가 보기에도 뻔한 팔자였다. ‘김밥만세’라니. 유명 프랜차이즈 김밥집은 로열티 낼 여력이 없어 못 들고 비슷한 이름을 지어 한 눈에도 짝퉁스러운 색깔의 간판을 내건 데부터 이 가게의 모양새는 알만 한 것이었다. 그래도 주위에 아파트도 있고 하니 어찌어찌 장사는 되고 있지만 가게를 열 때 끌어 모은 남의 돈이 워낙에 많아 24시간을 장사해도 쥐는 돈이 없었다. 일단 장사를 하고 있으니 회전되는 현금이 있어 서준이 책값도 내고 가끔 고기반찬도 해 먹고 하며 4인 가족이 버티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더 우리 집 사정은 허술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다 떨어져 부모님께 세 달 정도만 고시원비를 좀 내주십사 부탁했을 때 아버지도 어머니도 “못해주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새벽 타임의 가게는 평소보다 더욱 한가해서,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 녀석만 가끔 한 번 전화를 받고 오갈 뿐 가게 안에서 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 세 시쯤 아르바이트생이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는 라면을 끓여 주었고, 나와 아르바이트생은 라면을 우물대며 말없이 케이블 티브이를 돌려 보았다. 리모콘으로 아무리 채널을 돌려봐야 볼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게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가장 큰 문제였다. 나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수다를 떨며 깔깔댈만큼 친하지도 않았고, 피차간에 그렇게 친해질 생각도 없는 사이었으니 티브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 채널도 하나 같이 살색 영화나 방영하는 통에 1차적으로 제외되고, 공중파의 재방송 채널은 한물 간 드라마들을 내보내고 있어서 서로의 취향이 겹치기가 힘들었다. 면발을 다 먹을 동안은 내 눈이 티브이를 향하고 있으니 계속 채널을 돌려주다가, 내가 국물을 마시며, 그냥 손이 허전해 들고 온 토익책을 잠깐 펼쳐볼라치면 기다렸다는 듯 자기가 보고 싶은 채널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르바이트생이 매일 해주는 예의치레였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자 아르바이트생은 아예 처음부터 자기가 보고 싶은 채널을 틀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방영해주는 스포츠 채널이거나, 생중계가 없는 날에는 밤새 스타크래프트를 재방송해주고 있는 게임채널이었다. 온게임넷과 엠비씨 게임. 케이블 티브이 안에 게임 채널이 두 개라는 것도 나는 그제야 처음 알았다.

나도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안다. 천 구백 구십 칠년에, 차범근사단에 열광하기도, H.O.T의 캔디춤에 혼이 빠지기도 애매한 영역에 끼인 청춘들이 피씨방이라는 그들만의 아지트에 모여들어 외국 자본이 깃발을 꽂은 이 ‘I.M.F의 땅’ 대신에 테란과, 저그와, 프로토스라는 종족의 이름으로 우주를 땅 따먹어가며 이 잔인하고 가난한 세계를 견디게 해주었던 컴퓨터 프로그램, 정도의 사회적 정의를 내려볼 수도 있겠다, 만은 그건 오버이고.

가상현실 속에서 상대를 죽여 승리를 얻는 많은 프로그램들 중에 특히나 유서 깊고 가장 인기 많은 게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이 틀어놓은 게임 채널에서, 마치 실제 축구 경기나 야구 경기라도 되는 듯 흥분해 ‘중계’를 하고 ‘해설’을 하는 ‘게임 전문 캐스터’와 ‘게임 해설위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리둥절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많은 사람이 열광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모르는 영역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까. 카메라가 종종 비춰주는 관중석에 꽉 찬 사람들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환호와, 진지하게 게임을 지켜보며 혼잣말로 훈수를 놓는 아르바이트생을 쳐다보며 나는 얼핏 ‘모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것도 같다.

요즈음의 나에게, 세상에 존재하고 회자되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출제될지도 모를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의 답안 중 하나일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한 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대단히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느냐를 평가해 사람을 뽑는다, 라고 인사담당자들과 구직 선배들이 힘을 주지만 나는 글쎄, 일단은 시험지를 앞에 두고 뭔가 하나를 제대로 못 쓸 때의 막막함에 대한 공포가 겁난다. 그래서 다수의 지식, 다수의 욕구, 다수의 열광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알아야 했다. 축구나 야구 경기의 룰이나 역사도 엄연히 상식의 한 영역으로 출제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스타크래프트의 룰에 대해 쓰라, 뭐 그런 문제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최소한, 매년 여름마다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다는 무슨 결승전에 십 만 명씩 운집하는 현재의 열기가 앞으로 더 확장 지속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라는 말로 이유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보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세계로 눈을 돌린 나를, 아르바이트생은 “드디어 그 읽지도 않는 책 닫았네요.”라는 짧은 비웃음으로 환영해주었다.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매커니즘의 그 게임을 멍한 눈으로 좇고 있는 나를 위해 아르바이트생은, 그러니까 이건 본질적으로 누가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해서 상대방의 똥줄을 타게 하느냐하는 게임인데, 저기 저 파란색 보석같이 생긴 게 미네랄이라고, 저 자원을 많이 먹어야 병력을 뽑을 수 있는 거예요, 병력 많이 뽑으면 당연히 상대방 죽일 수 있고, 그럼 상대방 땅 빼앗을 수 있고, 땅 빼앗으면 자원 못 캐게 하니까 상대방은 병력을 못 뽑고, 그럼 상대방 죽고, 끝, 이라고. 십년 동안 십만명 정도의 사람에게는 설명해본 듯한 능숙함으로 간단명료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나와 아르바이트생 간 최초로 두 마디 이상 이어진 대화였다. 이후로도 나와 아르바이트생은 간헐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오직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이야기에 한했다. “저건 뭐야?” “저건 뭐예요.”라는 가끔씩의 대화 말고는 침묵으로 일관된 싸한 새벽이었지만 나도 아르바이트생도 전혀 불편할 것은 없다고 느꼈다.

3.
  아버지가 잘 나가는 건축자재회사 사장일 때 엄마는,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럴 듯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갖는 화가였다. 아버지가 잘 못 나가는 건축자재회사 사장일 때 엄마는 미술학원의 원장이었고, 아버지가 아예 안 나가는 부도 사장이 되어 집에서 맞고 게임을 치고 있자 엄마는 김밥집의 주인이 되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벌어 오는 돈이 집에서 가지는 가치가 커져 갔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돈이 엄마도, 아빠도, 나도, 서준이도 만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요즘이 당신 평생 중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날이었다. 집안에 돈 문제가 불거질수록 엄마는 더 열심히 일했지만 엄마의 노동이 곧 돈을 불러 모으지는 못했다. 열심히 산다는 것과 부자가 된다는 것 사이에 놓인 엄청나게 넓은 간격을 요즘 나는 새벽의 김밥집에서 여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 화실 용도로 가장 볕이 좋은 방을 따로 내주고도 네 가족이 넉넉하게 공간을 이용하며 살았던 큰 집에서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이미지는 화실 의자에 앉아,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그림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그렇게도 살아본 여자였다.

엄마는 새벽에 움직이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가다 한 번씩은 졸만도 한데 엄마는 꾸벅대는 대신에 김밥을 말았다. 엄마가 새벽 동안 말아둔 김밥은 새벽 다섯시부터 조금씩 팔려 출근 시간 동안 동이 났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모인 천원 짜리를 들고 집에 돌아가 학교 가는 서준이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는 모양이었으니 엄마는 새벽 내내 그 감사한 김밥 말고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나나 아르바이트생에게나 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엄마는 우직하게 김밥을 말고 썰기를 반복했고, 그럴수록 나는 스타크래프트 재방송이나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에 큰 흥미도 재능도 없었던 내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티브이 화면을 응시하며 했던 생각은, 왜 저렇게 어렵게 만들어야만 했을까, 저게 과연 재미있을까, 그런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순전히 아르바이트생의 선택에 의해 온게임넷이 아닌 엠비씨게임 채널을 쳐다보고 있던 그 날 엄마는 처음으로 김밥을 썰다 말고 티브이를 쳐다보았다. 참기름이 범벅 된 김밥용 칼을 들고 엄마가 쳐다보는 화면에는 엠비씨가 후원하고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는 미술 전시회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네, 마네, 드가, 전설의 인상파들이 한국에 옵니다! 인상파화가 특별전. 문의 1588에 2525. 지금 예매하세요.

우리 엄마는 화가였다. 참기름 향기가 아니라 우아한 미술용 신나 냄새를 몸에 달고 살던 진짜 화가 말이다. 광고가 끝나고 시작한 경기의 엔트리를 보더니 “에이 경기 재미없겠네.”하고 아르바이트생이 채널을 온게임넷으로 돌렸을 때, 엠비씨 계열사가 아닌 채널에서는 그 광고가 나갈 일이 없겠구나, 라고 난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못될 수가 있지. 나는 엄마가 다시 김밥용 칼이 아니라 붓을 들고 싶다고 할까봐 좀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김밥을 마는 엄마의 손은 황민숙씨 본인의 인생만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차도 없이 똑똑똑 열 번 김밥 한 줄을 가지런히 썰어내는 황민숙씨의 손목에는 나를 포함한 4인 가족의 목구멍이 졸랑 졸랑 매달려 있었다. 엄마는 화가였다. 하지만 다시는, 최소한 당분간은, 화가로 돌아가지는 말았으면 싶었다. 딸내미랍시고 생각하는 너비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내 자신의 꿈마저 책임지지 못할 입장에서 엄마의 꿈까지 사랑해줄 자신은 없었다.

4.
  엄마에게는 면접을 본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지난 새벽에도 엄마의 가게에서 티브이만 보았다. 떨어지는 게 너무 익숙해진 면접을 위해 엄마를 기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나가기 전 문 앞 거울에서 화장을 점검 하고 있을 때 마침 일어나 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트렁크 팬티에 늘어진 런닝셔츠를 입고 까치집이 된 머리를 저벅저벅 긁고 있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도 다 달아나지 않은 잠이 귀찮음과 함께 맺혀있었다. 그대로 날 지나쳐 어느 방문으로든 좀 들어가 주었음 싶어 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그 모습으로 서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면접 보러가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꺼낸 말이긴 했지만 아버지의 반응이 너무도 시원치 않아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잘해라 하고 빈 소리로 빌어주기에도 지긋해질 만큼 나의 면접이니 시험이니 하는 것은 기대 불능이 된 것일까.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이 날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대문을 열자 구두솔을 집어 건네주었다. 까만 구두에 먼지 앉으면 그렇게 보기 싫은 게 없다, 저기서 털고 가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컴퓨터 앞에 가 앉았다. 나는 구두솔을 다시 제자리에 올려 두고 나와 대문을 닫았다.

 오늘 면접을 보게 된 곳은 정유회사였다. 무작정 이력서를 내민 많은 회사들 중에서 운 좋게 서류가 통과된 몇 안 되는 곳들 중 하나였다, 만은, 걱정이다. 나는 석유 산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원전 개발의 선두에 서서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이 되어 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사실은 대체 어떻게 서류가 통과됐는지도 모르겠다. 난이도는, 일단 며칠 전에 취업 카페에서 뽑아 본 정유회사 면접 기출문제들 정도로만 나와준다면 대답하기에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닐 것 같았다. 정신 차리고 시험을 보면 안 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과연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가, 가장 자신이 없는 문제다.

조금 일찍 도착한 시험장에는 나보다 부지런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에이포 용지 출력물을 저마다 손에 쥐고 바쁘게 눈을 굴리는 중이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들어가 가방에서 내 몫의 에이포 용지를 꺼내들었다. 에이포 용지를 봤다, 눈을 감았다, 천장을 보았다, 기지개를 켰다 하며 사람들은 불경처럼 무언가를 암송하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 해주십사. 대한민국 석유 물가는 세계 6위, 취직 좀 시켜주십사. 커피도 잘 탑니다, 월급만 주십사. 저마다의 나무아미타불이 경쟁적으로 대기실에 채워졌다. 나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 앓고 있는 모두에게 행운을 기원해주었다. 거짓말이다. 나에게만 행운을 기원해주었다. 나 역시도, 나무아미타불이다.

면접을 마치고 목적지 없이 땅만 보고 좀 걷다 보니 어느새 가로등불이 다 켜져 있었다. 살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아차, 스물 네 살 먹은 어린이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건방진 말입니까?, 만은 정말 살다보면 느끼는 것인데, 뭐든지 처음이 유난스러운 것 같다. “처음엔...다 그래.”란 말은 모텔 침대 위에 앉은 오빠들만 쓸 수 있는 말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지. 처음 면접을 망쳤던 날이 마치 새벽 네 시쯤에 꿨던 꿈처럼 머뭇하게 떠올랐다. 친구가 아닌 친구‘년’을 불러 한참 수다도 떨고, 2005년 대학가요제 대상 먹은 불후의 명곡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도 불러 제끼면서 너희들! 정말 인재 하나 놓친거다! 후회 한다! 진짜 후회한다 꼭! 하며 온 세상을 향해 악도 질러 보았던 나의 ‘처음’. 2007년 3월 졸업 예정이었다가, 또 잠시간은 2007년 8월 졸업 예정이었다가, 지금은 2008년 3월 예정으로 날짜만 수정된 이력서를 출력해 여기 저기 던지는 동안에 나도, 나의 친구년들도 서로의 유쾌하지 못한 결과에 익숙해져갔다. 무어라고 묻기도, 딱히 대답해주기도 어려워 서로를 부르지 않게 된 날들이 벌써 얼마였더라. 취직하고 만나자는 기약조차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서 잠수해 있다. 천 구백 구십 칠 년 더하기 십 년의 대한민국이란 세상에서 스물 네 살로 산다는 것은 ‘처음엔 다 그러’는 것이다. 처음에만 다 그러는 것이다. 그러다 조금씩 내가 그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이란 사실을 능숙히 받아들이는 요령도 하나 쯤 생기게 되는 거고, 요령을 끝내 터득하지 못하면, 어차피 죽기 위해 사는 인생, 남들보다 약간 빨리 바이바이 하는 거고, 어쩌다보니 1년을 또 버티면, 졸업 예정일을 다시 바꿔 이력서를 뿌리면 되는 거고….

집에 들렀다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엄마의 가게로 갔다. 집에 돌아온 후 처음 엄마의 새벽 타임을 엿봤던 날처럼 나는 가게의 맞은편에 서서 김밥 마는 엄마를 보았다. 가게는 여느 때와 같았다. 손님은 없었고, 가끔 퇴근이 늦은 사람들이 찾아와 엄마가 말아 놓은 김밥을 사갔고, 배달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전화를 받은 후 오가는 동안 혼자가 된 엄마는 또 말없이 김밥을 쌌다. 엄마의 인생은 매일 밤 그런 식으로 갔다. ‘그런 식’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엄마도 한 때는 ‘처음엔 다 그래’ 였겠지만. 나는 오늘 면접에 좀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나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번번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느 날과 같이 나는 김밥을 마는 엄마의 등 뒤에서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보고 있었다. 승부 흐름상 진 쪽이 ‘gg’라는 패배 신호를 채팅창에 입력할 때까지 게임이 진행되는 특성상 그동안 봤던 경기들의 길이는 다 제각각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게임이 오래갔다. 본진의 미네랄이 모두 동날 때까지 안 끝나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미네랄을 캐내는 일꾼인 테란의 SCV가 본진의 미네랄이 다 떨어지자, 본래 미네랄이 있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때 다른 지역에서는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SCV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같은 편 전투 병력들이 그 전장에서 맥없이 죽어 나가고 있었는데 SCV는 자신들의 업무로 지정되었던 미네랄 채취가 다 끝나자 자발적으로 동료들을 도우러 가는 법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동료들은 찔려 죽든 맞아 죽든 상관없이 가만히. 앞으로도 계속 가만히. 게이머가 무언가 다른 임무를 명령하지 않는 한 SCV의 제자리는 누가 뭐래도 거기다. SCV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자기 의무가 아닌 일에 대해 슬퍼할 만큼 SCV는 게으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정상적으로, 그런 식으로 살아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인생은, 게이머가 움직이라고 명령하기 전에는 자기 영역을 지키는 SCV처럼 살다가 끝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갑자기 지정된 장소를 이탈해 혼자서 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SCV 한 마리가 보였다. 아르바이트생은 혀를 끌끌 차며 “버그났네.”라고 했다. 프로그램 오류로 가끔 저렇게 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 미쳤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리와 우정인 것이다. 버그가 걸리자 게임은 즉시 중단되었다. 미친 자의 여유 혹은 여유롭게 미친 자는 그 세계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새벽 타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인상파화가특별전에 표 한 장을 예매했다. 만 오천원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의 부스러기를 털어낸 것이었으니 나로서도 시원하게 지를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최소한 어제의 그 게임에서만큼은 버그 걸려 미친 SCV가 더 멋있었다. 이유라면 그게 전부다.

5.
  SCV의 몸값은 미네랄 50원(가스 필요 없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유닛 중 가장 싸다. 주된 업무는 미네랄 채취, 가스 채취, 건물 짓기, 유닛 수리, 정찰 등이다. 미네랄을 캐던 드릴로 공격도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출력해 온 예매 확인증을 본 엄마의 표정은,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공격을 할 수는 있기는 한 SCV가 정말로 공격을 나가야 할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대단스런 칭찬까지는 바란 게 아니었지만 최소한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종이를 들여다본 후 엄마가 꺼낸 첫 마디는 환불받을 수 있지? 였다. 환불을 왜 해?라고 묻자 엄마는 그럼 너가 갔다 오던지, 라고 하며 다시 김밥을 말았다. 내가 거길 왜 가? 라고 묻자 엄마는 그럼 환불을 하던지, 라고 했다. 그 와중에 은박지에 포장된 김밥들은 SCV가 물고 오는 미네랄처럼 반짝 반짝 쌓여갔고, 대화는 마치 짠 것처럼 늘 원점이었다.

이를테면 루트 같은 게 있죠.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SCV에게 미네랄을 캐서 커맨드센터로 가져와라는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프로그램이 최단거리를 계산한다고 할까? 커맨드 센터와 지정된 미네랄 사이의 최단 거리가 루트로 지정되는 거예요. 그 경로 사이에 갑자기 뭔가 장애물이 끼어들지 않는 한, 미네랄이 다 떨어질 때 까지 SCV는 그 길로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앗, 또 대화가 길어졌네. 라고 나는 생각했다.

SCV 하나. 밥을 둥글게 뭉친다. 뭉친 밥을 쌓인 김에 살짝 찍으면 김 한 장이 따라온다. 밥을 고르게 편다. 왼손으로는 단무지와 부추, 오른손으로는 햄, 계란지단, 당근을 집는다. 밥에 얹고 김을 만다. 칼을 든다. 열 번 내리 찍는다. 은박지를 편다. 칼의 날밑으로 김밥을 들어 올린다. 은박지에 내려놓는다. 은박지를 꼭꼭 눌러 싼다. 통유리 바로 앞 김밥 자리에 얹어 놓는다.

SCV 둘. 컴퓨터 파일에서 ‘지원서’ 폴더를 연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불러온다. 회사 이름을 바꾼다. 중간 중간 정유 사업에 대한 젊은이의 야망에 대해 글짓기를 해 짜깁기해 넣는다. 이메일로 원서 접수를 한다. 가끔가다 서류가 붙을 때도 있다. 단 벌 정장을 드라이 맡긴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회사에 간다. 나무아미타불. 면접을 본다. 유감이라고는 쓰여 있지만 전혀 유감스럽지 않아 보이는 메일 한 통을 받는다.

갑자기 뭔가 장애물이 끼어들지 않는 한, 또는 미네랄이 다 떨어질 때 까지, SCV는 그 길로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였다.

나는 어느 날과 같이 게임 채널을 켜놓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유닛들 대신에 오늘은 엄마의 살찐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그러니까, 만 오천원을 아까워해야 하는 정도의 루트를 지정받은 것일까. 김밥 열 다섯줄의 값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쉽게 벌릴 수 있는 액수는 아닌 게 확실하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저마다 쌀값으로는 환산되지 않는, 꿈, 같은 것도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티브이에는 등을 보이고 내내 김밥만 마는 엄마가 인상파화가특별전 광고에 몸을 돌리는 이유는 그런 거, 엄마의 앞치마 주머니 속으로 꽃아 지는 천원짜리처럼 잡히지는 않는 거, 대용량 전기밥솥에 하루 세 번씩 끓이는 밥처럼 배에 채워지지는 않는 거, 그래도, 낯간지럽기는 해도 희망이랄까 뭐 그런 거, 때문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엄마의 꿈이나 희망의 가격은 만 오천원보다 더 싸구려가 된 걸까? 결국 엄마의 루트란,

만 오천원어치도 안 되는 꿈을 팔아 김밥을 마는 것.
어쨌거나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7.
  테란과 저그의 싸움이었다.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던 테란 게이머는 몇 번의 전투 끝에 확실히 승기를 잡았다. 그 때 저그 게이머가 타이밍을 잘 맞춰 내가 졌소, 라고 했다면, 나는 울지 않았을 텐데.

보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로 ‘gg'신호를 안 보내는 녀석이었다. 해설가들은 져도 곱게 지지 않겠다는 깡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며 해몽 좋은 소리를 했지만 본인들도 적잖이 지겨운 목소리였다. 그 때.

카메라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던 테란의 프로게이머, 즉 모든 테란 유닛의 생사여탈권자께서, 얼마 남지 않은 본진의 미네랄을 바지런히 캐고 있던 SCV들을 모두 한꺼번에 이동시켜, 적진의 한복판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참다 참다 꼬라박네.” 하고 아르바이트생이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공격기능을 갖추기는 한 SCV들이었다. 겨우 그런 녀석들이었으니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적진에서 무방비로 터져나갔다. SCV는 죽는 소리도 자잘했다. 그래도 다른 유닛들은 소리라도 지르고 죽더만은, SCV가 죽는 소리는 그저 펑, 아니 빵, 정도. 빵. 빵. 빵, SCV들은 그렇게 터져나갔다.

SCV들의 난데없는 몰살에 해설진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아! SCV 댄싱이네요!” “왜 빨리 gg 안 치냐 이거죠?” 암호 같은 해설에 이해할 수 없는 환성이었지만 느낌상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딴 SCV쯤 다 죽여봐라, 난 그래도 너한테 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버티고 있냐, 이런 신호 정도인 게 분명했다. 카메라가 비춰주는 프로게이머의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웃을락 말락 하는 표정과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는 중이었다. 난 거기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나의 위에 납작 누워있는 신의 얼굴이 딱, 그럴 것 같았다.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시더니 이 야심한 새벽에 프로게이머의 얼굴로 강림하실 줄이야.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고시원에서 방을 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불합격 통지를 받고서도 이제는 흘리지 않게 된, 무척이나 오래 묵은 눈물이었다. 저럴 것 까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니 그러니까 게임 돌아가는 판국이 자기 손바닥 안에서 뺑뺑이 치고 있는 거라면 말이다. 왜, 그래봤자 오십원짜리들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라고. 천 구백 구십 칠년에서 어물 어물 십년을 더 사신 이 시대의 신에게, 뭐 그런 비슷한 존재에게, 빌고 싶었던 거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네, 마네, 드가, 전설의 인상파들이 한국에 옵니다! 인상파화가 특별전. 문의 1588에 2525. 지금 예매하세요.

엄마는 깁밥을 썰었다. 

당선소감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이란 개념만큼은, 전 세계 칠십억 인구에게 동등하게 부여되고, 또한 그 모든 개인이 매 시간, 매일을 살아가는 자체가 ‘시대’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며, 언젠가는 ‘역사’로서 기록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삶이란 내가 체감하고 있는 것보다 실은 더 무거운 것 같다. 아침에 학교를 올 때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 아닌 전자카드를 사용하고, 텔미춤을 연습해 UCC를 만들고, 아이큐가 430이며 시력은 4.0이 넘는다는 사람에게 박수치며 환호하는 것 하나 하나가 우리가 꾸려나가고 있는 ‘시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사람들이 동방신기 오빠들만큼 인기가 있었나요?”라고 태연히 묻는 초등학생들을 만날 때 느끼는 먹먹함은, 반면에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소란스럽고, 강렬하게 시대에 어필하며 살아야 역사에 점이라도 찍겠구나 하는 다짐 같은 걸 하게도 해 준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칠십억분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단하고 멋진 말은 능력이 없어 못하더라도, ‘시대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 시대에 대한 나의 발언’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위선은 부리고 싶지 않다. 구직자와 실업자, 알바생과 스타크래프트가 공존하는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이 ‘시대’의 일부였고, 부족한 재능이나마 동원해서 그 시대를 말해보고 싶었다. 그나저나, 우리 강산을 푸르게 푸르게 해야 하는데, 이런 재주 없는 글이 세상에 나와 지면을 잡아 먹어 밀림 벌채를 재촉하여 지구 온난화에 기여했음을 생각하니, 엘 고어씨를 비롯, 전 인류에게 죄송하다. 성균인을 위한 신문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 한 후, 적당한 재활용 공정을 거쳐 가까운 시일 내에 내 뒤를 돌봐 줄 화장실 휴지로 변신해 돌아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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