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솔직히 고백하면 기자는 전쟁이란 단어가 매우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는 기자가 태어난 해와 30여년이라는 차이가 있고 대한민국이 가장 최근 관여했던 베트남 전쟁도 기자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화기획 철원기행의 발단도 단순 호기심이었다. 이산가족의 절박함이나 분단의 아픔보다는 역사로만 봐왔던 분단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을 뿐, 심지어 마음 한 구석에는 눈 덮인 철원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이번 취재를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발 했을 당시의 깃털 같던 마음은 분단 유물을 하나하나 접할 때 마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더해 나를 짓눌렀다. 제 2땅굴 벽에 걸린 선전구호 문구들, 노동당사에 새겨진 총탄과 포화의 흔적들…… 역사 교과서에 적힌 한 줄의 문구로는 분단의 아픔을 나타내기에 얼마나 부족했는지, 철원군에서 주최하고 있는 안보관광에서 ‘관광’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절실히 느꼈다. 유물 곳곳에는 북에 대한 노골적인 미움이 박혀 관광객들의 눈에 자극을 준다. 분명 북에서도 비슷한 구호를 외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미움의 상징이 돼버린 철책 앞에서 탄식의 한숨을 눈밭으로 흘려보냈다.

전쟁 발발 이후 58년 동안 남북은 누가 옳고 그르다 싸움에만 혈안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누가 잘못했는가가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분단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일까? 이번 취재를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기자는 이런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는 확신이 들었다. 옳고 그름은 통일의 벅찬 기쁨이 이뤄지고 나서 따져도 늦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는 이번 문화기획에서 분석한 ‘발해를 꿈꾸며’의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우리가 나갈 길을 찾아요’란 구절에 101% 공감한다. 물론 전쟁 끝에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남는다. 그러나 그 원망에 발목 잡혀 우리가 이뤄야 할 더 중요한 것을 놓친다면 미움보다 더 큰 후회가 남을 것이다. 철원의 봄은 눈이 녹을 때가 아닌 미움의 응어리가 녹을 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