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르포 - 국내 유일의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큰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은 초라했다.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이란 간판이 아니었다면 병원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이천 화재 참사와 관련한 숱한 기사들과 함께, 길게 늘어선 ‘사망자 및 부상자 명단’이 눈길을 끈다. 그 밑엔 ‘아시는 분은 사무실에 알려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지난 7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참사.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외국인 노동자의 희생도 33%에 달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연고를 두고 있지 않아, 명단의 문구가 보여주듯 그들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조차 없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은 항상 산업 재해의 최대 피해자에 속해 있지만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인 ‘인권’도 불법이라는 이유로 묵살되기 십상이다. 불법이라는 신분과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변변한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일 병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줄기 빛’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설립된 곳이 바로 구리시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이다. 지난 2004년 김해성 목사의 권유로 신설된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모든 분야의 진료와 치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에게도 전문적인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병원이다 보니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2층으로 올라가자 △방사선실 △특수검사실 △주사실 △진료실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좁은 통로에 배치된 의자에는 환자들이 가득하다. 진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통로를 오가며 살펴보고 있는데 누군가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건넨다. “어디서 오셨어요?” 기자가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아님을 눈치 챈 모양이다. 취재 중이라고 밝힌 후 무슨 연유로 병원을 찾게 됐는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많은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중국 동포인 김명우(53)씨는 현대제철에서 강철을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하루 종일 피오줌을 쌀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강남병원에 입원했지만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용역 업체는 1백 40만원을 주고 ‘이걸로 끝내자’며 매정하게 돌아섰다. “억울하죠. 두 달 동안 일 못나간 것도 서러운 데 마음 편히 치료받는 건 고사하고 일자리까지 잃었으니. 그 동안 감당해 온 입원비와 약값, 숙식비까지 계산하면 턱 없이 부족한 돈인데…”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찾아왔다. “이 병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요즘 세상에 이런 곳 없어요”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중 32%가 사고성 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작 산재보험·고용보험의 가입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는 42%가 ‘모른다’고 답변해 혜택을 받기는커녕 보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처럼 의료 보험에 대한 접근권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 특히 불법 체류자들에게 이 병원은 말 그대로 ‘단 한줄기 빛’이다. 폐렴으로 온몸에 열이 올라 고생했다던 남순(38)씨는 “그냥 버려져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인데 얼마나 감사한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 '불법' 신분으로 인해 정당한 건강권마저 주장할 수 없었던 그들은 이 병원에서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받고 있다.

병실 및 의료진 부족, 환자 수요 감당 어려워
3층으로 올라가보니 물리치료실과 입원실이 보인다. 간호사가 링거를 교체해 주자 ‘감사하다’며 쑥스럽게 웃는 방학춘(61)씨는 온 몸이 퉁퉁 붓고 열이나 어제 응급 호송된 환자다.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 많이 나아졌다”며 “이 병원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인식, 좋아졌어요. 정말 고마워요”라며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방 씨처럼 입원할 수 있는 환자의 수도 제한돼 있는 실정. 현재 입원실에는 30개의 병상이 있지만 이 정도로는 환자들을 모두 입원시킬 수가 없다. 현재 있는 침대도 이미 환자들로 꽉 찼다. 이에 대해 남미라 간호사는 “그래도 환자들이 같은 처지에 있다 보니 서로 양보해 침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통원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가장 필수적인 의료진도 부족할 때가 많다. 현재 병원 진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중보건의가 담당한다. 공중보건의란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무의촌에 들어가 활동하는 의사’를 말하는데, 이외에는 상주하는 의사가 없다 보니 의사가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오후 6시 이후로는 다른 병원 의사가 자원 봉사를 오기도 하지만 넘쳐나는 환자를 감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저녁이 되자 복도 끝에서 간호사와 환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더듬더듬 말을 건네는 환자에게 간호사가 “오늘 정형외과 선생님 안계세요. 봉사하시는 분이라 진료하시다가 자기 병원으로 다시 가셨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간호사의 팔을 붙잡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우기는 환자.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병원까지 애써 찾아 온 그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임산호 기자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로 병원 부담 늘어나
이러한 인프라 부족의 문제는 재정 부담이 크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병원이다 보니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무료진료사업 지원금과 외부 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료진료사업은 3개월 이상 사업장에 지속 근무한 외국인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해운 직원의 말처럼 재정의 대부분이 후원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보건복지부 공공의료팀이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환자 본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지침을 개정하려고 한다”고 밝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처럼 아무리 침대와 의료진이 부족하다 해도 환자들은 하나같이 ‘우리 같은 사람을 돌봐주는 게 어디냐’며 한 없이 감사해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이 죽음의 문턱에서 이곳을 찾아온 것이지만 그들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침울한 표정은 찾아 볼 수 없다. 육체적 아픔의 고통보다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한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병원 밖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법적 문제, 예산 문제 등을 운운하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료 지원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유일의 병원’이 아닌 ‘대한민국’에 감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권 수호가 이뤄지길 바라기에는 그 꿈이 너무 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