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살다보면 마음 저릿한 사랑이 만드는 굳은 신념에, 강한 신념으로 더욱 애틋해지는 사랑 이야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사랑이 신념을 사로잡고 신념이 사랑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는 법. 연극 <블라인드 터치>는 이처럼 그 경계에 서있는 두 남녀의 위태로운 일상을 그려낸 2인극이다.  

작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주둔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유명 밴드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주동자란 오해를 받고 사형선고까지 받은 남자와 옥중 결혼을 택한 여자의 실화에 남자가 출소하게 된다면 이들 부부의 일상은 어떻게 그려질까?’란 궁금증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극 중 남자는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명목으로 교도소에 복역하게 되고 여자는 강연, 집회 등을 통해 남자의 무고함을 사회에 알리려 백방으로 노력한다. 결국 여자의 이런 열정적인 헌신으로 재심판결이 열리게 되고 남자는 급작스런 감형을 선고받은 후 출소하게 된다. 그러나 ‘반미’라는 사회적 감정을 입은 이 연극의 사랑이야기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식 단순 멜로를 뛰어넘어 사회 문제를 분명히 짚어내고 있다.

평온한 부부의 모습을 하다가도 “지금 사람들은 제대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야?”라며 몸부림치는 남자가 오만에 찬 사회에게 끊임없이 제기하는 의문들은 뇌리에 박힐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외침을 무시한 채 그를 투쟁의 승리자로 상징화하고 영웅화하기에 급급하다. 이처럼 남자는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지만 평범한 일상과 마찰을 일으키고 여자와의 사랑에도 서툰 모습을 보이며 불안과 두려움만을 표출할 뿐이다. 그렇게 평범하게 흐르는 듯 어색하게 계속되는 일상이지만, 부부는 상대방의 세계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를 어루만진다. 이처럼 연극은 상연 내내 운동권과 사회, 전과자와 비전과자, 남자와 여자의 불협화음 속에서 삶이란 아름다운 음악을 두드리며 우리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물론 혁명, 투쟁, 타도라는 단어들의 난무는 이 연극을 감상하는데 거부감을 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두운 사회의 그늘이 존재했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함께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남자의 출소를 기다리며 연습했던 단 한 곡, 'Love me tender'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여전히 마음속에서 울리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기간:~3월 16일
△장소:산울림 소극장
△가격:3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