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신소재 석사 3기)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도서관에서 기분 좋게 책을 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바로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의 펜으로 그어진 밑줄과 메모들로 가득한 책을 봐야만할 때 이다. 각종 시험대비서와 토익 토플책의 답에 표시를 하고 채점까지 해 놓은 것은 기본이고 학우들이 풀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연습문제를 책에 직접 풀어 놓은 전공서적,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치고 친절하게 자신의 의견까지 제시해 놓은 교양서적 등 낙서로 얼룩진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한두 사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자신의 책으로 착각 했다고 변명한다면 나 자신도 다른 곳에서 실수를 한다라는 점에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겠지만 그 많은 책의 낙서들이 같은 이유에서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풀고 내가 먼저 밑줄 치며 내 공부만 잘 될 수 있다면 다음에 그 책을 빌리게 될 사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 뒤에 읽을 수백 수천 명의 학우들에게서 어느 것이 답인지 고민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강요하는 현상은 체벌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캠퍼스의 또다른 폭력문제이다.
더욱 마음 한구석이 씁쓸한 이유는 학교 도서관의 특성상 외부 사람들이 도서관 책을 대여하기는 쉽지 않다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 낙서의 주인공이 바로 성균인이라는 사실이다. 고등교육 기관이라 말하는 대학에서 여러 사람이 쓰는 물건을 소중히 다뤄야 하며 내 것 인양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아주 기초적인 도덕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학문을 하고 연구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얼마 후면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새내기들이 평화로운 캠퍼스의 봄을 느끼며 입시라는 겨울을 막 지난 그들의 마음을 녹여줄 책들을 펼치게 될 것이다. 바라는 것은 우리들이 오랫동안 쌓아놓은 이기심의 탑이 그들의 기분을 망쳐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깨끗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선배들의 나쁜 습관을 답습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