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이펙트 』, 로빈 스턴

기자명 이선영 기자 (sun3771@skku.edu)

『가스등 이펙트 』로빈 스턴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풀지 못할 복잡한 미로 속에 갇히곤 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고함만 지르는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가 있는가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다.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가족들은 내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직장에서 나는 분명 일을 잘 해내지만 상사 앞에서는 한없이 무능하고 존재로만 느껴진다.

수많은 심리저서들이 이러한 오묘한 인간관계에 대해 ‘첫인상을 좋게 하는 방법’이나 ‘주위에 사람이 모이게 하는 법’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올해 출간된 『가스등 이펙트』는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 같아도, 피할 수 없는 심리적 억압과 복종’이라는 독창적인 역학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붙임성 좋은 케이티는 20대 후반의 매력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 브라이언은 지나가는 모든 남자들에게 친절한 그녀의 태도가 불만스럽다. 그의 불만이 계속되자 그녀도 자신의 삶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경박하게 행동해서 남자친구를 곤란하게 만든 것인지도 몰라’. 케이티는 이제 길을 걸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상담치료사였던 저자 로빈 스턴은 이처럼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법한 실제 사례를 통해 ‘가스등 이펙트’라는 재미있는 역학관계를 유추해낸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때 상대방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가스등 이펙트’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뜻한다.

케이티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단지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한 것뿐이야”라고 침착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방의 영향력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영향력은 조용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믿는 1단계 ‘불신’에서 나아가 2단계에 들어서면 걱정이 시작되고 ‘자기방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3단계 ‘억압’에 이르면 상대방이 옳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과 정체성은 모두 잃어버린 채 오직 가해자의 인정을 받기 위해 관심을 쏟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해자가 처음부터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대로 세상에 대한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상대방 역시 자신과 동일한 논리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돼버린다는 점에서 가스등 이펙트는 인간관계의 비밀을 드러내 주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답답한 미로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받는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감정이입이라는 덫에 빠진 케이티에게 저자는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24시간 동안 자신만의 의견을 머릿속에 담고 생활해보라고 충고한다.

이외에도 책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영향력에서부터 완전하게 압도되는 영향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크게 문제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인간관계의 답답함을 느낀다면, 로빈 스턴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조종자에 사로잡혀 ‘가스등 이펙트’의 역학관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풀리지 않는 문제, 그 해결의 열쇠를 이 한 권의 심리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 몫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