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 '사물놀이 30주년 공연' 모습

종로의 한 건물 지하방에서 터진 사물놀이의 첫 기지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단 네 명의 연주자와 네 개의 타악기, 그리고 소수의 관객만이 지켜본 사물놀이의 초라한 시작. 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이 세계에 몰고 온 한국 전통 타악의 울림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울림은 올해 서른 개의 촛불을 켠다.

 
농악을 체계화 시켜 발전시킨 우리 음악 ‘사물놀이’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네 명의 ‘원사물놀이패(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故김용배)’는 독재정권 하에 행해진 전통문화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했다.

사물놀이는 이전까지 정형화 되지 않아 음악보다는 놀이라는 개념이 우세했던 전통 타악을 다듬어 하나의 악곡으로 편제한 것이다. 호남과 영남지방의 농악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물놀이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대부분의 전통 타악이 실외에서 행해졌던 것과 달리 앉은반(앉아서 치는 풍물 가락)의 창작과 움직임의 체계화를 통해 실내에서도 무리 없이 연주할 수 있도록 했고 멜로디보다 리듬을 강조해 다른 음악 장르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했다. 그 결과 사물놀이는 △장고 △징 △꽹과리 △북의 단순한 조합으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다.

전통과 혁신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 문화로 자리잡다
이후 사물놀이는 전통 계승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뻗어 나간다. 김덕수 씨는 82년 일본 진출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등지를 돌며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렸고 89년에는 수교도 맺지 않은 동유럽과 구소련에까지 진출하면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사물놀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13년 동안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해외홍보에 힘썼던 수잔나 삼스탁 씨는 “외국인들은 음악적 질과 더불어 관객을 얼마나 즐겁게 해주는가를 공연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데 사물놀이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사물노리안(Samulnorian: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만이 가진 최고의 타악 기술로 그들을 만족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씨는 자신이 창조한 사물놀이를 클래식, 재즈 등 여러 음악 장르와 결합시키며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실험과 노력 덕택에 사물놀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장르로 우뚝 설 수 있었다.

30주년, 사물놀이의 초심으로 돌아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공연’은 사물놀이의 30년 발자취를 종합하고 그 성과를 자축하는 축제였다. 당일 공연에서는 30년 전 원사물놀이패가 사물놀이를 처음 출범 시킬 때 선보였던 △문굿 △비나리 △삼도가락 △판굿이 연주됐다. 이들은 모든 사물놀이의 기본 골격이 되며 가락의 변형을 시도할 때도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30주년 기념공연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오프닝격인 ‘문(門)굿-길놀이’부터 시작된 공연은 ‘비나리’로 이어졌다. 제의적 성격이 강한 비나리는 ‘앞길의 행복을 빈다’는 순우리말로서, 관객들의 앞길을 축원하는 의식이다. 우리나라 예술사를 살펴보면 광복 이후에 국민의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불교의 화청(和淸)이나 광대의 고사소리 등 축원 기능을 담당하는 제의문화가 고사 위기에 처한 적이 있는데, 원사물놀이패는 지방각지에서 전해 내려온 비나리를 사물놀이를 통해 정리함으로써 전통문화의 한 줄기를 회생시켰다. 이는 사물놀이가 예술사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이번 공연의 메인 무대는 단연 삼도 가락이었다. 장고만으로 구성된 ‘삼도설장고가락’과 사물놀이의 대표곡인 ‘삼도농악가락’은 △경기 △호남 △영남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던 흥겨운 전통 타악을 사물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 씨가 사물놀이 초기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라고 말한 만큼,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세 지방의 가락과 사물의 타악을 조화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수잔나 씨가 “아직도 이 가락을 제대로 연주하는 다른 사물놀이패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삼도가락은 기술이나 네 악기의 조화 면에서 고난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사물놀이의 정점이다.


마지막에 펼쳐진 '판굿'은 타악의 리듬보다 상모돌리기와 고속 회전등을 통한 시각적 효과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이에 대해 사물놀이패 온새미로의 대표 이재화 씨는 “흥겨운 움직임 중심의 풍물을 이어받은 사물놀이와 시각적 요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판굿의 퍼포먼스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실제로 공연 현장에서는 상모의 회전이 빨라지고 연주자의 몸짓이 격렬해질 때마다 관객들이 아낌없는 환호성을 보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연을 관람한 최은영(19) 양은 “사물의 신명나는 가락과 사물놀이의 몸짓이 전통문화의 재미와 멋을 느끼게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광을 뒤로 한 채 사물놀이에 새 시대를 바라보다
이와 같이 사물놀이 30주년 기념공연은 지난 역사만큼이나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전용 공연장 하나 없는 사물놀이는 갈 길이 멀다”는 김씨의 말처럼 아직 사물놀이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제 사물놀이의 한 세대는 지났다. 지금 사물노리안들은 30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또 다른 30년의 과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