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이명곤 부대변인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 진실화해위,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다

진실화해위의 발족 배경은 무엇인가
6ㆍ25전쟁과 일제강점기 당시에 왜곡됐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군부독재시절까지 과거 청산의 시도는 묻히게 됐다. 그러던 중 참여정부에 들어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는 여야의 판단 하에 과거사 청산이 본격적으로 실시됐지만, 개별위원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사건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따라 2005년 5월 3일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함과 동시에 같은 해 12월 1일 진실화해위가 발족하게 됐다.

주로 어떤 피해사례를 다루는지
크게 △일제강점기 △6·25 △군부독재시절 등으로 나눠 각종 의문, 의혹이 제기된 피해 사례에 대한 재조사 작업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의혹사건’처럼 무고한 납북어민들이 간첩으로 의혹받은 사건을 들 수가 있다. 당시엔 첨단 장비가 없다보니 고기잡이를 하다 조류에 떠밀려 영해선을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이란 누명을 쓰게 되는 어민들이 발생했으나 권위주의 시대에는 이들의 소송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즉, 우리의 활동은 자의적으로 지난 역사를 재평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사건에 대해 정확한 증거 자료를 찾아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과거사 정리 작업에서 느낀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
일을 하려면 ‘사람, 돈,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람부터 말하자면, 조직 시스템에 있어 인력난이 심각하다. 신청접수는 1만 건인데 비해 조사관은 약 2백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명당 50건을 다루는 셈인데 간단치 않은 조사 작업이다 보니 과부화가 걸리기 마련이다. ‘돈’도 예산문제로 인해 충분하지 않은 편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마음’이다. 우리는 검찰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로 법원에 출두하도록 하는 강제구인권이나 수사한 결과를 가지고 법원에 처벌을 요구하는 기소권이 없다. 때문에 가해자 및 피해자의 진술을 얻어내거나 정당한 방안을 제시하는 데 많은 공이 들어간다.

# 과거사위를 둘러싼 통합 논란
진실화해위를 중심으로 한 과거사위 통합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다수의 개별 위원회 역할이 중복되다 보니 가장 포괄적인 업무를 다루고 있는 우리 진실화해위를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나온 안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통합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업무가 중복된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각 위원회가 다루는 사업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조사와 진실 규명을 한 후에 이뤄지는 추모ㆍ위령 사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 데 이를 한 곳으로 모으다 보면 업무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 결과적으로 각 사업에 대한 집중도 분산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이미 조사관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통합까지 될 경우 그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와 관련, 과거사 청산에 부정적인 이명박 정권의 보수성향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과거사위는 독립기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행정부나 대통령 소속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폐지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여야합의를 통해 제정된 법에 근거해 존립하는 위원회에 대해 쉽게 폐지를 논할 수는 없다. 물론 존치기간을 채운 후에 위원회가 해체될 수는 있으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요청하는 국민에 대한 의무를 외압으로 인해 저버릴 수는 없다. 또한 폐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과거사위의 운영이 정치 논리에 휘말려 영향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법을 통해 사회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법적안정성’을 해친다는 비판에 대해
법적안정성을 운운하면서 모든 걸 덮어둘 수는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밝힌 후에 화해를 이뤄야 한다. 독일의 경우 나치전범에 대해 자기들 스스로 처벌하고 외국에 보상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과거와의 화해를 이뤘기 때문에 오늘날 유럽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법적안정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의 관계가 삐거덕 거리면 문제가 된다.

# 오해를 넘어 국민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노무현 정부와 사상 및 궤적을 같이 한다는 ‘이념의 편향성’이 문제로 대두 됐던 걸로 아는데
위원회가 중립과 객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출범 당시부터 구성요건과 구성 비율을 법으로 명시해 놓았다. 위원회는 15명으로 구성되는데 정치인을 제외한 △법조인 전문가 △학계 전문가 △종교인 세 부류로 구성된다. 또한 행정부에서 4명, 입법부에서 8명, 사법부에서 3명을 추천하도록 해 독립기구로서 위상을 지키도록 규정했다. 즉, 정부의 입맛대로가 아닌 법적 규정을 통해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념이 편향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지금껏 구상한 사업들은 많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없었다. 정부와 국회에서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1억원을 주지만 소식지와 포스터 등을 만들다보면 그 이외의 사업에 투자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여건만 조성된다면 진실 규명된 내용을 압축한 조사보고서를 국민들에게 배포하거나, 꼭 알려야할 사건에 관한 정보를 10분 내외의 영상물로 제작해 대학 강의의 참고자료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원 검찰청 교육이나 군인들의 훈련 과정에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내용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과거청산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왜 필요한가
전 세계적으로 이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해방된 나라 또는 군부정권을 지나 민주주의가 실현된 약 50여개의 나라에서 과거청산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미래의 가치기준을 잡아가고자 하는 것. 그 개념이 과거청산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이러한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는 우리 대학이 ‘전문가’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전문가 양성에만 급급하다보니 정작 자동차를 어디로 몰고 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역사이다. 과거에 비춰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힘, 이것이 바로 과거청산의 중요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