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준 편집장 (oversea@skku.edu)

며칠 전 미국에서 국내 어느 대학의 시간강사로 일하던 한모씨가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우리나라 사회를, 특히 대학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녀가 죽은 뒤 발견된 유서에는 그녀가 우리나라 대학의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느낀 차별과 아픔, 병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실 대학교 시간강사의 자살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몇 해 전에도 현실을 비관한 시간강사들의 자살이 서너 차례 정도 보도된바 있으며, 본지에서는 2년 전에 시간강사의 부당한 현실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제기가 이뤄진지 몇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발생했다는 것은 여전히 시간강사들에 대한 부조리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학교에도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어느 대학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이 맡는 강의가 전체의 40%이상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시간강사들이 있을지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 중 시간강사에 대한 현재의 처우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용주인 대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간강사들은 여러모로 고용하기에 ‘편한’ 존재이다. 시간강사들은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인건비가 적게 드는데다 교원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고용보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아무런 보장이 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시간강사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길 기대하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해 5월 국회에서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인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지난해 국회 앞에서 2백일 가까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의 농성은 사회적 관심조차 끌지 못하고 있다.

시간강사로 일한 2년이 20년 같았다는 한씨.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직 제도상의 미비함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무관심했던 ‘우리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시간강사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학점이나 수업내용 외에 그들의 고충에 대해서 생각해본 학우가 얼마나 될까. 지난해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도 우리는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한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고통 받고 있었음에도. 몰랐다고 말하기 전에, 사회제도를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변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과 같이 대학사회를 구성하는 동반자로서, 그리고 제자로서 우리부터 관심을 갖고 깨닫는 것이 생명을 던져 현실을 바꿔보고자 했던 이들에 대한 우리의 속죄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