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며, 때때로 법정에서 날카롭게 검사를 몰아붙이는 변호사. 오늘날 많은 대학생들이 꿈꾸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 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민단체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고 신문에 비판의 날이 선 글을 끊임없이 기고하며, 법정 밖의 사회에서 살아 숨 쉰다.

‘꼭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꼭 들어야 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남들이 주저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 민경한 변호사를 만나 그의 깊이 있는 외침을 들어봤다. 

# 19년 동안 걸어온 변호사의 ‘正道’

■ 변호사를 희망하게 된 계기 및 과정은
어렸을 때부터 원칙과 정의를 중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인지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 언행 등을 접하게 되면 반드시 이의시정을 요구했다. 소수자가 입는 피해를 구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법조인을 희망하게 됐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삼수를 하고서도 대입에 실패한 후 시골에서 1년 동안 농사를 짓다 뒤늦게 우리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워낙 민심이 등을 돌려 혼란스러운 시기였다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당시 고등학교 동창이 회장으로 활동하던 ‘흥사단 아카데미’라는 서클에서 활동했는데, 학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운동권 서클 중 하나였다. 하지만 10.26이후 전두환의 공포정치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져 생계비를 벌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는 등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본격적인 법조인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당시 판·검사, 변호사의 구체적 역할은 잘 몰랐으나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변호사의 길로 굳히게 됐다. 공직자이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판·검사와는 달리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지지하거나 성명서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변호사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 소송에만 얽매여 활동하는 대다수의 변호사들과는 달리 사회 활동이 활발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민변)이 이러한 활동의 주축이라고 생각되는데
1990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면서,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구속하고 처벌 하던 판·검사 시절과는 달리 막상 퇴직을 하고 변호사가 되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을 자주 접했다. 브로커를 고용하고 소개비를 지급하는 등 변호사법을 어기는 그들을 보면서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민변은 인권옹호와 소수자 보호에 관련된 고민을 함으로써 변호사의 ‘정도(正道)’를 걷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소수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것이 변호사의 진정한 임무’라는 생각이 같다보니 92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사건을 맡았다고 들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애초에 근로제에 관심이 많아 사법연수원내의 노동법학회에서 활동했었고 민변 초창기에는 노동위원회로서 활동했다. 특히 90년에서 96년 인천에서 변호사 생활을 할 때는 노동관계 사건을 한 달에 한 건 이상은 맡았다.

그런데 산재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사고경위, 피해자의 과실비율 등을 산정하기 위해 같이 작업했던 동료 근로자의 증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료 근로자가 피고회사에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증언을 기피하고 진실성을 담보한 경우가 드물어 어려웠다.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비한 것도 어려움이었다. 이 때문인지 90년대 중반 과로사로 인한 교사를 변호했던 일이 가장 인상깊었던 소송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는 과로로 인한 것이지만 사인불명, 돌연사 등으로 인한 사망의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사례가 거의 드물었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하면서 판례의 변천이나 비슷한 상황에서의 상이한 판결 등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 석사학위 논문을 ‘과로사’로 결정하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 열정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승소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다.

■ 부패방지에 노력해 온 공로로 반부패유공자로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청백리 양성과 정치개혁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쏟는 이유가 있다면
19년 동안 활동하면서 단순히 소송과 개별 사건을 통한 법적 구제만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법의 양대 이념은 정의와 형평이다. 그러나 우리의 법 현실은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다. 힘 있는 사람이 범법행위를 해 형이 확정됐을 경우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ㆍ복권을 해버린다. 그런데 이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바로 공무원과 법조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의식 개혁을 하는 것이 부정부패를 추방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힘썼다. 이외에도 △감찰위원 △인사위원 △강의 △기고활동 등을 통해 직접 목격한 법조인과 공직자들의 비리 실태를 고발하면서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 개인 변호사 사업과 동시에 민변ㆍ시민단체 등의 사회참여를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단체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민변의 경우 회원 수가 많다보니 각 분야에 능력 있는 전문가가 많고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때문에 개인 변호에 비해 조직적이고 효율적이다. 또한 집단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 중 하나다. 언론기관과 시민단체 등 일반 국민이 민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귀를 기울여주다보니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활동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많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변호사의 수익 사업 자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 외에 의미있는 활동을 하기에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그의 목소리

■ 다양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들을 책으로 출판하기까지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대학생 때부터 문제 상황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처음 신문에 기고를 한 것은 대학시절 입시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주제로 한 글이었다. 이후에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주저 않고 글을 썼다.

물론 단 하나의 글만으로 세상이 통째로 바뀌지는 않는다. 일부에게는 나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꼭 해야 할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지인들도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속 시원히 해줘서 고맙다’며 공감하고 있어 힘이 난다.

■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지성인 또는 법조인이라면 사회지도층으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올곧은 길을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혈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말고 청탁과 압력에 굴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이뤄지고 있는 삼성 특검 수사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우물쭈물 거렸고, 결국 민변과 참여연대가 최초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특검이 진행 중인 상태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진행 상황을 보면 상당히 미온적이고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사법에는 ‘성역’이 없다. 지위고하를 불문, 법을 어기면 엄벌에 처해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법치질서가 확립되고 기업경영이 투명해질 것이다.

■ 자신이 법조임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 대한 비판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내부비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수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진정한 개혁은 외부의 비판보다 오히려 내부 구성원의 개혁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부담감이 클 때도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 대학과 대학생, ‘멀리보라’

■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 대학 사회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로스쿨 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로스쿨 사안을 보면 대학 이기주의와 자신들의 보신주의에만 빠져있다고 생각된다. 로스쿨 설치대학과 정원수에만 혈안이 돼 정작 중요한 △커리큘럼 △시험의 방향 △법조인 양성 제도 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것. 또한 설치대학과 정원수 발표 후에 여러 문제들이 제기됐는데 왜 그 이전에는 심도있게 논의하고 강력히 문제제기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절실하다.

■ 법조인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합격이 어려워 공부만 하다 보니 법조인이 된 후의 비전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여유나 정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법조계에 발을 들이게 되면 법조인의 길이 생각만큼 쉽고, 편안하고, 미래가 밝은 직업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무리해서 법조인이 되기보다는 진정한 고민이 전제된 후에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특히 지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현안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더 나아가 대안까지 고민해보는 실천적인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 민경한 변호사의 약력 

-1983,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7,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1990, 사법연수원 제19기 수료 및 변호사 개업

-1992,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가입

-1999, 대한변호사협회 공로상

-2002,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원 수료(노동법 전공)

-2005, 반부패유공자 대통령상 수상(부패방지위원회)

-2006, 광주지방변호사회 공로상

-2008, 現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