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선집 산골나그네』, 김유정

기자명 권시정 기자 (ksj0114@skku.edu)

해학, 풍자, 희화화, 골계, 아이러니…. <봄봄>과 <동백꽃>으로 친숙한 김유정의 작품을 설명할 때면 전형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이다. 토속어와 서민적인 속어 감각, 아름다운 순우리말 어휘 등은 김유정만의 빼어난 문학적 특징으로 인정받아 왔지만, 염상섭·채만식과 같은 동시대 작가에 비해 그가 가진 ‘시대의식’은 가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유정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되돌아본 그의 소설에는 야학을 설립하고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경험과 시대를 향한 진실한 고민이 녹아 들어있다.

이러한 고민은 그의 처녀작 <산골 나그네>부터 유고작인 <따라지>에 이르기까지 농촌의 비참한 현실과 식민지 현실 속 사회의 구조적 모순, 동시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시선이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언제나 우매하고 단순하거나, 약점을 지녀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처녀작 <산골 나그네>도 예외가 아닌데, 이 소설에는 헐벗은 채 유랑하는 여인과 우직한 ‘촌놈’ 덕돌이 등장한다. 여인은 산골 어느 가난한 주막에서 작부노릇을 하며 걸식하다가 주막집 아들 덕돌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여인은 덕돌의 옷을 훔쳐 폐가로 달아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겨두었던 병든 남편에게 훔쳐온 옷을 입히고 함께 도망친다. 작품 속에는 아이러니한 상황반전과 함께, 배게 밑에 덕돌이 준 은비녀를 두고 떠날 정도로 순수한 여인의 모습과 그런 그녀가 거짓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현실을 대조해 당대의 안타까움을 더 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농촌을 소재로 한 김유정의 소설들이 식민지 현실은 외면한 채 단순히 향토성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사실과 다름을 드러내준다.

또한 도시를 배경으로 당대의 경제적 궁핍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그가 작고하기 두 달 전에 발표한 <따라지>가 손꼽힌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도시 하층민의 생활을 그려낸 김유정의 몇 안되는 작품으로 사글세를 받아내려는 주인마누라와 셋방 주민간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얼굴이 뜬 채 끙끙 앓고 있는 ‘노랑퉁이’ 영감과, 카페에서 일하는 아끼꼬, 누나에게 기생해 사는 작가 톨스토이에게 집세를 재촉하나 받아내지 못한다. 결국 순사까지 불러와 가장 버릇 없는 아끼꼬라도 데려가서  집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나, 주인마누라의 바람과는 달리 아끼꼬는 오히려 주인마누라에게 보복할 생각을 하며 돌아온다.

그가 노골적으로 당대 사람들의 불행과 궁핍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속에 담겨진 그의 고민까지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돈’으로 얽혀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던 시대적 상황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이에 관해 한번쯤 고민하게끔 한다.

스물 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탓에 문단에서 활동한 시간은 4년에 불과했던 김유정. 그가 오늘날까지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 속에서 보이는 해학적 웃음과 함께 현실에 대한 치열한 사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