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희(경제06)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호랑이가 말하는 중국사>

우에다 마코토 지음, 김경호 옮김 성균관대학교출판부(240쪽), 정가 10,000원,

2008년 2월호랑이의 입을 빌려 중국의 인구 변동, 기후의 변화, 생태환경을 논한 인문학적 역사서!“이제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아모이 호랑이, 그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개발의 역사는 환경 파괴의 역사에 다름아니다.”역자가 "중국사를 자연과 환경이란 주제를 통해 진지하게 설명한 서적을 국내에 소개할 기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 역사와 환경, 인간과 자연이란 부분에 많은 사람이 다시금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소박한 심정으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밝혔듯이 자연과학, 인구학, 생태학, 생물학 등등의 다양한 학문의 성과를 반영해 중국사의 환경사적 변천을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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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건네는 화해의 메시지

비디오가게에서 만화비디오를 빌리면 으레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라는 멘트가 나오며 호랑이가 아기를 엎고 산속으로 도망가는 이 장면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호랑이에 무서운 선입견을 갖게 하는데 그나마 일조 했다고 본다. 사실 내 나이 또래의 호랑이는 동물원 깊숙한 곳에서 사육사가 던져주는 닭고기를 받아먹는 덩치 큰 동물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의 선두주자이다. 

호랑이는 사실 민중과 친숙한 존재이다. 수많은 조선후기 민화의 주인공은 담뱃대, 까치와 어울리는 정다운 호랑이이며 호랑이의 영험과 신비로움이 자연과 공존을 이루며 살아가던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러한 호랑이가 이 책에서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수천 년간의 침묵을 직접 깨고 사람의 몸을 빌려서 까지 책을 써내려간다. 담담한 어투의 중국 복건성의 아모이호랑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상록활엽수림이 일 년 내내 푸르른 잎이 무성한 삼림지대”

 인간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이듯이 호랑이에게도 그들의 보금자리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될 만한 지형과 기후를 추적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술되어있다. 역사학 연구자인 저자는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고 환상과 신비의 구름으로 쌓여있는 호랑이의 보금자리와 그들의 시간들을 오히려 매우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추적한다. 온량지수, 쾨펜지수, 사료에 남아있는 기후에 대한 흔적, 호랑이에 대한 기록, 기후변동, 인구의 변동, 이동에 따른 지형 변화 등을 세심하게 조사함으로써 호랑이의 생태에 과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Ecological History - 생태환경사, 역자의 언급 - 는 어쩌면 역사인식의 새로운 장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이다. 저자가 자연이 남긴 발자취를 통해 아모이호랑이의 보금자리를 살펴보기 원했다는 것은 저자의 역사인식 대상이 왕조와 특정 중요인물에 점철되어있는 거시사가 아니라 철저하게 낮고 볼품없고 별 가치 없게 여겨진 것에 초점을 맞추는 미시사의 관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미시사와 관점에서 감춰진 역사의 한 장면을 복원해 낼 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다. 호랑이에게 집중한 저자의 노력이 아니라면 죽어서 가죽으로 모셔져 있는 아모이 호랑이의 메시지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인 공 덕택에 아모이 호랑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호랑이의 말을 계속 들어볼까.

“음계(陰界)의 호랑이”

앞서 말한바와 같이 호랑이는 민중과 친숙하다. 영적세계의 살아있는 동물로써 그 영험함이 인간이 경외하는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호랑이는 항상 “백성, 민중”과 함께 한 것이다. 호랑이는 마을을 평안히 하는 토신이고 사람과 함께 호흡해온 동물인 것이다.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용이 실제로 있건 없건 간에 - 오히려 상상의 동물이어서 그 신비함과 위엄이 지속됐는지도 모르지만 - 용이 하늘로 치솟아야 왕의 위엄도 같이 올라가는 것이다. 용은 전적으로 하늘의, 권위의, 천자의, 왕의 상징이다. 호랑이는 그렇지 않다. 해가 지는 서쪽의 안락함이며 납과 같이 무겁게 두껍게 존재한다. 이런 호랑이의 갑작스러운 출몰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이에 의미를 두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랑이와 인간의 조우가 점점 “출몰”에서 “살기”, “피” 와 같이 변하며 결국 인간과 호랑이 사이에 장벽이 생기게 된다. 누가 만든 것일까?

 “격변, 그리고 내몰리는 호랑이”

인구증가, 기후변동, 벌목, 개간 등 인간이 자연 -自然- 이 그 뜻 그대로 스스로 그러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면서 인간과 호랑이의 공존은 붕괴한다. 산지를 개발해 경작지로 만들고 나무를 채벌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행하고, 추워진 기후로 대규모 인구이동으로 특정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먹을 것, 살 곳이 없어진 호랑이는 결국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장벽을 만들었다 금을 긋고 벽을 높이 쌓았다. 금만 그었으면 다행인데 땅을 뺏고 금을 그었다. 소통도 끊겼고 호랑이도 그 삶이 끊겼다. 아모이 호랑이의 서운한 마음이 어쩌면 이때부터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뒤이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농촌이 집단화되고 이로 인해 무분별한 채벌, 산림의 훼손과 호랑이 학살의 내용이 나온다. 중국의 공산주의 역사와 함께 호랑이가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이 멸종해 가는 모습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에 반응하는 동시 하나의 상관관계가 떠올랐다. 

 인간의 욕심은 자연을 파괴한다. 얼마 전 모 드라마에서 산에서 떠오는 약수물을 먹고 배탈 나는 장면이 기억난다. 그 물은 호랑이가 마셨던 물이고 우리도 함께 마셨던 물이다. 정수기가 없어도, 끓이지 않아도 우리 할머니는 밭에서 일하시고 그 물을 그냥 드셨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가 인간인 것이지 서로 다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의 물을 마시고 한 공기를 호흡하고 좋은 것, 안 좋은 것 함께 떠않는 것이다. 인간에게 당장 좋아보여도 자연에게 해를 끼친다면 결국 나에게도 더 큰 해가 되어 돌아옴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호랑이가 사라져가니 내가 호랑이를 고작 동물원의 영감으로 보지 않았는가? 다음세대의 아이들이 호랑이가 뭐냐고 네이버 지식인에 올리기 전에 아모이 호랑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을 잘 되새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