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청용 기자 (hacar2@skku.edu)


집으로 돌아와도 언제나 혼자인 소녀. 학교엘 가도 동기들의 비아냥에 지치기만 하는 소녀. 노래방에서 힘들게 번 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녀. 그나마 소녀가 의지할 사람은 함께 탈북한 후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한 소년. 남한 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것은 ‘오토바이 타기’뿐인 소년. 언제 만날지 모를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항상 배낭에 넣고 다니는 소년.

 

‘탈북청소년’인 이 소녀와 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ㆍ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 세 번째 작품인 ‘배낭을 맨 소년’의 주인공들이다. 만약 평범한 감독이 ‘탈북청소년’이라는 소재를 떠안게 됐다면, 그들의 힘들었던 북한 생활과 함께 ‘천국’같은 남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감동과 눈물로 버무려 찍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뭔가 다르다. 바로 탈북청소년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선때문이다.

정지우 감독은 탈북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어떻게 해서든 적응해 보려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 소년은 저항심리에서 폭주족 사회에 안주해 버리고, 소녀 역시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해 노래방의 콜라를 훔친다. 우리는 이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부유하는 모습, 차라리 북한에서의 삶이 더 나았다며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적나라한 모습에서, 그들에 대한 편견이 조용히 깨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흑백 화면과 잔잔한 음악, 절제된 대사들은 편견의 파괴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정 감독은 “동정심의 이면에는 죄책감이, 죄책감에는 부담이 따른다”며 탈북청소년의 문제를 담담하게 다룬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 영화는 또한 탈북청소년들이 겪는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다. 남쪽 출신이든, 북쪽 출신이든 10대라면 누구나 겪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이 영화 속 소녀와 소년도 똑같이 겪고 있다. 단지 그들에겐 ‘출신 지역’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의 혼란이 더 얹혀져 있을 뿐이다. 우리 주변의 10대와 똑같지만 더 여린 그들, 결국 정 감독은 탈북청소년에게도 똑같은, 아니 더 큰 배려와 세심한 관심을 쏟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은 여전히 ‘탈북’ 청소년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마치 소녀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자 파출소로 도망치듯 달려가는 영화 속 택시기사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배낭을 맨 소년은 끝내 남한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소년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우리들의 ‘동정을 가장한 무관심’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