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사안에도 주도적 역할, 재판관 성향 획일화는 개선돼야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한다는 이념 아래 설립된 헌법재판소(이하:헌재)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헌재 설립은 제9차 개정 헌법이 그 계기가 됐다. 이전에는 헌법의 본래 취지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3·15 부정선거, 4·19혁명 등 국민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987년에 이르러 대통령 직선제 등의 규정을 추가하면서 민주주의 실현의 수단으로 구색을 갖추게 됐고 이어 1988년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헌재가 탄생하게 됐다. 이와 관련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임광규 회장(변호사)은 “독립적인 헌법 기관이 설립되면서 헌법 해석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다”고 그 탄생 의의를 밝혔다.  

설립 초기 기본권 수호 … 참여정부 이후 사회쟁점 주도해
설립 초기의 헌재는 ‘인권수호의 장’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다. 1백50명의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정부와 헌법학자의 지원에 따라 기반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에 따라 심판사건 수도 늘어났다. 실제로 헌재의 연도별 심판사건접수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설립 초기 3백여 건에 불과했던 심판사건이 2001년 1천 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천7백71건으로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유치장 수용과정에서의 신체과잉수색 위헌 결정 △교도소 수용자에 대한 과도한 계구 사용 위헌 결정 △호주제 헌법불합치결정 등을 인권신장에 기여하는 ‘디딤돌 결정’으로 꼽았듯, 헌재는 기존의 사회규범에 국민의 기본권 문제를 투영한 판결을 내려왔다. 우리 학교 김일환 법학과 교수는 “9차 개정 이전의 헌법이 유명무실했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만 이와 달리 헌재의 역할 및 영향력이 점차 확대돼 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재는 2003년 참여정부를 기점으로 기본권의 사전적 수호 역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 정책적 사안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헌재는 법률에만 주력하는 대법원과 달리 이념적 판단을 하는 특성을 갖는다”는 임 변호사의 말처럼 전 사회를 뜨겁게 달군 신행정수도이전과 노무현대통령탄핵사건 등은 헌재가 사회적 여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 교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을 견제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부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헌재의 정치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재판관 보수 성향·다양성 부족 등 극복점으로 꼽혀 
일각에서는 헌재를 두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주장한다. 가장 큰 화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이하:재판관) 구성원의 성향 문제. 실제로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부인한 병역법 합헌 결정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결정 △유권자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합헌 결정 등에 있어 재판관의 보수적 성향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 돼왔다. 이와 관련 서강대학교 임지봉 법학과 교수는 “50, 60대 보수 남성위주로 재판관이 구성되다 보니 기득권 위주의 판결이 대부분”이라고 언론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교수나 전문가가 아닌 법조인만 재판관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 보니 재판관의 구성을 다양화함에 있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법원이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법원에 제기하는 소송과는 별도로 사건과 관련된 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제청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크게 소요돼 국민이 제도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헌재가 탄생 20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메일 서류 송달 시스템 △전자도서관 구축 △초등학생을 위한 만화 책자 제작 △찾아가는 헌법교육 등을 계획하며 친근한 헌법기관의 이미지로 부각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 20년, 입법부와 행정부와는 독립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 온 헌재. 앞으로의 20년, 더 성숙한 헌재가 되기 위해서는 외적 노력을 넘어 약자의 작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내적 노력도 확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