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식코' 개봉으로 반대여론 확산

기자명 김청용 기자 (hacar2@skku.edu)

중년의 한 실업자가 오른쪽 다리에 생긴 상처에 고통스럽게 바늘을 꽂고 있다. 그는 의사도 아닐뿐더러 의학지식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병원보다 불결한 곳에서 살을 꿰메다 보니 2차 감염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그가 마취제 없이 살을 꿰멜 수밖에 없는 이유. “병원은 부자가 아니면 못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허점을 꼬집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의 첫 장면이다. 지난 3일 개봉과 동시에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 ‘식코 보기 운동’도 함께 벌어지고 있는데, 비록 미국의 현실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이 영화가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당연지정제 폐지’ 이후의 구체적 현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백준선 과장은 “식코야 말로 당연지정제가 없어진 후에 나타날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영화”라고 말했다.

 

건강권 보장하는 당연지정제…경쟁 논리로 폐지 위기 직면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과 의무적으로 계약을 맺도록 강제한 제도이다. 얼핏 보면 정부의 지나친 개입 같지만 이는 ‘소득에 따라 내고 필요에 의해 보장받는’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평등한 의료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가 직접 관리·운영하는 유일한 의료보험이기 때문에 당연지정제가 존속되는 한 병원은 환자의 빈부에 관계 없이 동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와 관련 백 과장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같은 성격의 수술을 받으면 같은 수술비를 지불하므로 저소득층도 저렴하고 질 높은 진료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이 제도의 효용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껏 성역으로 남아있던 의료보험체계가 뿌리째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우리나라 민영의료보험을 미국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에 따라 각 행정부처가 병원 영리화와 사채 발행 허가 방침을 밝히는 등 그 기반 조치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당연지정제 ‘폐지’ 움직임이 있다. 이 취지에 동조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측은 “당연지정제가 획일적 의료서비스를 조장하고,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지정제의 폐지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폐지 후 의료 양극화와 비용 급등 피할 수 없어
그러나 이는 인권과 의료권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란 것이 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의 중론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이상윤 사무국장도 “상품 거래에 있어서는 다양한 선택의 폭이 중요할지라도 국민 건강과 관련된 당연지정제 같은 시스템은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당연지정제가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실제로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경우 대형병원들은 이익이 안 되는 국민건강보험 계약은 해제하고 부호들을 위한 의료서비스의 프리미엄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급등할 수밖에 없고 독감 치료비가 4천5백 만원에 이르는 미국의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숱한 시민단체들이 “이 대통령은 식코를 반드시 관람해야만 한다”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연지정제가 없는 미국은 전 인구의 1/7가량인 5천여만명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식코는 이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식코’에서 당연지정제가 폐지된 미래의 한국을 본다. 그러나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이 안건은 대운하에 묻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면, 우리 역시 자신의 살에 불결한 바늘을 꽂아 넣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