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최근 몇 년간의 문화 콘텐츠를 살펴보면 유난히 라디오라는 소재가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라디오 스타’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TV프로그램은 라디오 방송의 포맷을 빌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제공하고 있다. 제일 늦둥이인 뮤지컬도 영화의 감동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작년에는 영화 ‘라듸오 데이즈’가 개봉된 바 있으며 대학로에는 라디오방송을 소재로 한 뮤지컬 ‘On Air’가 상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하듯 최근 라디오의 위상을 나타내는 지표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작년 라디오 청취율은 0.2%정도 증가했다는 한 단체의 조사 결과가 있었고 MBC의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매년 1백 50억원 정도의 광고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에 맞춰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라디오가 부활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한 시민단체에서는 통계를 들어 라디오가 인간적인 유대를 강조하는 언론매체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과연 라디오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만큼 부활한 것일까?

일각에서는 통계를 근거로 한 ‘라디오 부활론’이 허상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전체적으로 상승한 라디오 청취율은 △KBS의 ‘콩’ △SBS의 ‘고릴라’ △MBC의 ‘미니 MBC’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며 “라디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 신매체의 도입으로 증가한 청취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라디오의 장점인 쌍방향 의사소통을 실시간 인터넷 댓글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DJ와 게스트의 토크 중심으로 획일화된 현재 라디오 방송의 경향을 바꾸지 않는 한 부활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취율 상위권을 차지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은 인기 게스트를 초청해 이야기 하는 토크쇼 방식으로 구성돼 있고 음악이나 건강, 과학 등을 다루는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은 갈수록 줄어들거나 비인기 시간대로 옮겨지기 일쑤다.

이런 라디오의 획일화 배경에는 독점에 가까운 MBC의 청취율이 있다. 갤럽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MBC라디오의 점유율은 48.4%(MBC 표준 FM과 MBC FM4U의 청취율 합산 기준)로 절반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7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청취율  보고서를 보면 상위 20위 가운데 MBC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는다. 김 평론가는 “독점이나 마찬가지인 MBC 라디오의 점유율 때문에 많은 방송사들이 MBC 프로그램의 포맷을 비슷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방송국은 MBC라디오의 방송편성과 상당히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교육 전문성을 살려야 하는 EBS도 ‘손석희의 시선집중’식의 2시간짜리 토론 프로그램을 기획할 정도라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독점적 판세 때문에 청취율이나 광고 수입같은 객관적인 지표도 상당부분 왜곡되고 있다. 우리학교 송해룡(신문방송)교수는 “MBC를 제외하고는 광고수입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MBC 라디오가 보여주는 성과를 통해 전체 라디오를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며 언론에 비춰지는 성과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라디오 부활’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송 교수는 “청취율에 치중하기 보다는 심층적인 정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라디오도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영국 라디오시장은 스포츠 중계를 전문으로 하는 ‘Radio 5 live’와 같은 전문 라디오 방송의 성공으로 전체 광고시장의 4%를 차지할 만큼 괄목할 성장을 거뒀다. 이에 힘입어 현재 영국에서는 260여개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송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전문 라디오 방송의 범위가 소수 분야에 한정돼 있으며 전반적으로 부실한 수익구조 때문에 쉽사리 기존 포맷을 바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행히 교통방송이 18년동안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통정보를 제공해왔고 KBS가 공영방송의 이점을 살려 경제, 독서 등 전문 분야를 개척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 평론가는 “아직 자그마한 움직임이고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한다면 한국 라디오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927년, 세계에서 6번째로 정규 방송을 시작한 라디오 선진국 한국은 80여년이 지난 지금 전문성과 차별화라는 ‘뜨거운 감자’ 앞에 서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한국 라디오가 향후 방향을 결정할 ‘감자’에 과감하게 손을 뻗을지 언론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