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다른 생각이 안타까웠다. 기부자들은 후배들과 모교를 위해 십시일반 모은 돈을 낸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 더 뜻 깊은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돈의 방향과 목적을 정한다. 학교는 기부자의 의사를 바탕으로 장학기금, 연구기금, 건축기금 등을 형성해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더 높은 순위를 위해, 경쟁대학을 이기기 위해, 세계 100위 대학이 되기 위해서 좋은 인프라와 건물은 필수적인 요소가 돼버린지 오래이니 말이다.
만 육천 학우들은 ‘힘들다.’ 1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에 다니지만, LCD 화면에서는 고마우신 선배님이 수억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쾌척하셨다고 해도 맘 속 깊이 감사하지가 않다. 등록금 인상률을 1% 낮출 수 있는 기부금은 명목 좋은 ○○기금으로 이미 묶여있기에……. 이렇게 숨이 턱까지 밀려올 때쯤에 졸업하고, 취직하면 전화가 걸려온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입니다. 기부하실…….”
몇 년 전에 선배님의 기부금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년 뒤 착공될 건물의 으리으리한 로비를 짓기 위한 기부가 아니라 맘 편히 토론하고 땀 흘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부였으면 어땠을까. 선배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선배님을 존경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겨울방학에 참가한 10번의 등록금 협상에서는 인상률 1%를 두고 학교 측과 학생 측이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선배님들의 기부금이 그 1%를 낮추는데 쓰였으면 어땠을까. “풀어라” “그럴 수 없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건축기금이 아니라 만 육천 학우 모두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말이 필요없는 기부금이었으면 어땠을까. 등록금 서기록이 좀더 자랑스러워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