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정찬 기자 (sansiro@skku.edu)

기부. 그 이름만으로도 뜻 깊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기부금의 현황을 분석하고 실태를 비판하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숭고한 뜻을 ‘괜히’ 건드리게 될까봐 말이다. 그러나 원고지 40매 분량의 기사를 쓰고, 600주년 기념관을 십수번 드나들면서 건방진 사명감을 느꼈다. 선한 것일수록 더욱 선하게 기여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모두의 다른 생각이 안타까웠다. 기부자들은 후배들과 모교를 위해 십시일반 모은 돈을 낸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 더 뜻 깊은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돈의 방향과 목적을 정한다. 학교는 기부자의 의사를 바탕으로 장학기금, 연구기금, 건축기금 등을 형성해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더 높은 순위를 위해, 경쟁대학을 이기기 위해, 세계 100위 대학이 되기 위해서 좋은 인프라와 건물은 필수적인 요소가 돼버린지 오래이니 말이다.

만 육천 학우들은 ‘힘들다.’ 1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에 다니지만, LCD 화면에서는 고마우신 선배님이 수억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쾌척하셨다고 해도 맘 속 깊이 감사하지가 않다. 등록금 인상률을 1% 낮출 수 있는 기부금은 명목 좋은 ○○기금으로 이미 묶여있기에……. 이렇게 숨이 턱까지 밀려올 때쯤에 졸업하고, 취직하면 전화가 걸려온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입니다. 기부하실…….”

몇 년 전에 선배님의 기부금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년 뒤 착공될 건물의 으리으리한 로비를 짓기 위한 기부가 아니라 맘 편히 토론하고 땀 흘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부였으면 어땠을까. 선배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선배님을 존경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겨울방학에 참가한 10번의 등록금 협상에서는 인상률 1%를 두고 학교 측과 학생 측이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선배님들의 기부금이 그 1%를 낮추는데 쓰였으면 어땠을까. “풀어라” “그럴 수 없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건축기금이 아니라 만 육천 학우 모두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말이 필요없는 기부금이었으면 어땠을까. 등록금 서기록이 좀더 자랑스러워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