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림 60년 교육 정책 기획

기자명 김지현 기자 (kjhjhj1255@skku.edu)

입시철마다 되풀이되는 정부와 대학의 기 싸움,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는 대한민국 중고생들.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태롭게 하는 정부와 대학 간의 이 지난한 갈등은 어디서 연원하는 걸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요동치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의 판세는 잠잠해질 수 없는 걸까. 교육주도권을 사이에 놓고 얽히고 설킨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주요 역대정권별(△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교육정책으로 되짚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우리나라 대학입시 제도는 1948년 해방 이후 지난 60년간 모두 16차례 변화를 겪었다. 평균 3년 10개월에 한 번 꼴로 바뀐 셈이다. ‘우리나라 교육사는 대입제도 변천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초중고 과정을 관통하는 공교육의 마지막 종착점인 동시에 남은 인생을 결정지을 주요 관문이기 때문에 대입제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제도가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총체적인 교육의 틀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민생교육희망넷 윤자영 간사는 “교육정책은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수시로 바뀌었다는 것은 역대정권이 교육개혁을 정치권력 정당화와 민심수습용으로 활용하고 대학 역시 해당 학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교육근간을 뒤흔들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즉 공교육 정상화를 강조하는 정부와 점수 높은 학생을 고르려는 대학의 주도권 다툼이, 난마처럼 꼬인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제도를 빚어냈다는 것이다.

대입제도 대학에 완전자율권…신군부 7·30교육개혁으로 국가관리 강화
해방 직후인 1953년까지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정부의 관여 없이 대학별 단독고사를 치르는 대학의 ‘완전자율’에 가까웠다.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입학 정원보다 현저히 적었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미군정기와 6·25를 거친 이승만 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를 교육지표로 삼았고 대학은 이러한 사상 아래 극소수의 친미·친일 엘리트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극복점으로 꼽히는 ‘획일화된 교육’은 바로 이 시기에 급격히 수입된 미국식 교육과 일제식민교육이 접목된 기형적인 교육제도가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정책은 박정희 정권 들어 더욱 강화됐다. 1963년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면서 자신의 쿠데타를 혁명으로 정당화하고 교육쇄신방안의 하나로 대학입학자격고사(1962년)와 대입예비교사제를 도입(1968)하는 등 대입제도에 있어서의 주도권에도 점차 개입하기 시작했다. 전북교육공동체연합 강민택 연구원은 “1960년대 이후 대학진학 욕구가 커지면서 무단 청강생이 크게 늘어나는 등 대학관련 부정과 비리가 횡행했다”며 이에 따라 “대학입시는 대학에 완전자율로 맡기던 이전과 달리 점차 정부가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주도의 이러한 시도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추구하던 고도성장 산업화와 맞물리면서 대학을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공장’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반복적인 훈련은 사지선다형 시험지에서 빛을 발했고 정답을 가장 잘 고른 순서대로 매겨진 학생서열은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와 그렇지 않은 학생을 양분하는 효율적인 잣대로만 작용했기 때문이다.

국가고사와 대학 본고사의 병행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정부·대학 간 신경전은 제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가 주도한 1980년 ‘7·30교육개혁’이 이뤄지면서 국가 주도권 강화로 분명한 가닥을 잡는다. △대학입시에 내신성적 반영 △교육방송 실시 △대학졸업정원제와 더불어 실시된 △과외금지 조처는 82.9% 국민 찬성을 받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지금도 “전두환 대통령이 교육정책 하나만큼은 화끈하게 잘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7·30교육개혁으로 어수선한 민심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특히 졸업정원제 실시를 통해 대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 당시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됐던 학생 시위를 감소시키고자 했던 전두환 정권은 결국 졸업정원제가 키운 대학생 집단에 의해 문을 닫았다. 졸업인원수를 제한시킴으로써 조성된 강제탈락 위기감이 오히려 탈락 가능성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전두환 정권 당시 대학을 다녔던 민성희(49) 씨는 “정권의 정당성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한 전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했다.

95년 학교교육 정상화 이념, 경쟁논리 도입으로 주도권 다툼 더 치열
1960~70년대 ‘대학 주도’에서 1980년 이후 ‘국가관리’로 넘어간 대입제도는 1994년 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실시된 이듬해 김영삼 대통령 정권의 ‘5·31교육개혁’을 분기점으로 학교교육 정상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21세기형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모토 아래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가 제시한 5·31교육개혁은 △단순암기 위주 교육에서 창의성 배양 교육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규제위주에서 자율과 참여위주로 우리나라 교육의 큰 틀을 새로이 짰다고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대학입시 과열을 막기 위한 △고교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의 금지, 일명 ‘3불정책’ 역시 학교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문민정부의 대표적 과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5·31개혁안의 많은 부분이 선진 외국의 것을 차용하고 있으며 근본바탕에 수요자-공급자 이론을 비롯한 경제논리와 효율성이 자리잡고 있어 역설적으로 공교육을 더욱 위태롭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교육에 시장경쟁 요소를 도입해 정상화를 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뿐더러, 이후 본격적인 사교육 시장의 팽배를 초래했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우수인재만 모집하려는 대학과의 주도권 다툼도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사립대들은 입시철마다 ‘내신 선발은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변별력이 떨어진다’ 등의 이유로 끝없이 대학주도의 본고사 부활을 주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논술 및 면접과 같은 새로운 전형을 추가해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해양대학교 김용일 교수는 “교육 개혁주체들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편협함은 5·31개혁안이 그 시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껏 소홀히 다뤄져 왔던 학교생활기록부의 실질 반영을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표면화시켰다는 점에서 5·31개혁안이 갖는 의미는 크다. 노무현 참여정부 역시 학교교육 정상화 이념을 더욱 구체화하는 데 교육정책의 궁극점을 놓았고 이는 현 정부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교육혁신위는 ‘대학서열구조 해체’를 정권 초기의 주 목표로 삼았다. 대학서열의 정점인 서울대를 없앰으로써 서열구조를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은 현실 앞에서 곧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민생교육희망넷 윤 간사는 “공교육 바로 세우기와 대학 산업논리기가 공존하는 교육정책의 양면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대학서열화는 더욱 고착화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안정적 장기 교육정책, 대학 자율 특성화와 병행 추진돼야
정부 혹은 대학의 입김에 따라 하루아침에 바뀌는 대입제도는 초중고 교육을 문제풀이와 암기식으로 획일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교육경쟁력 저하를 가져왔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교육열에 힘입어 대학진학률이 82%에 이르는 대학교육의 ‘대중화’를 이뤘지만 수치만 증가했지 정작 중요한 내적 질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교육 외적 논리에 의한 잦은 제도변경이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려 또 다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교육문제를 비 교육분야와의 전체적 연관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기존 관행도 한계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대 박세일 교수(5·31교육개혁 당시 정책기획수석비서관)는 “‘민주사회와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원개발’이라는 국가목표와의 관계 속에서 교육문제를 종합적·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크게 부족했다”고 밝혔다.

정부수립 60주년을 넘어 더 장기적 토대 위에서의 인재교육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서열구조의 유동화가 학교교육 정상화와 병행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 한 줄 세우기’는 정치적 이념과 시장경쟁논리가 오롯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학 자율에 의한 ‘특성화·다양화 전략’으로 대학들도 나름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자율’이란 명분을 대학 특성화보다 경쟁력 향상이란 목표 아래 현실화시키고 있다. 지난 60년 정권 그 어느 때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정부와 대학은 ‘전면 자율화’라는 공통분모를 위해 굳게 손을 마주잡은 것처럼 보인다. 향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새로이 전개될 교육방침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