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퍼포머 박주희

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S라인이 여배우의 필수 사항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이다. 군살 없이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며 쭉 뻗어 내려오는 다리, 거기에 몸의 좌우대칭까지. 이렇게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만들어낸 여배우들이 차고 넘치는 무대 위 어딘가에서 ‘휘어진 S라인’을 부르짖는 여배우가 있다. 훤칠한 키의 여배우들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휠체어를 탄 채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S라인은 장애여성의 인권을 연기하려 한다.

김승영 기자(이하:김) 올해로 6주년을 맞는 장애여성인권 극단 ‘춤추는 허리’를 창립했다. 어떤 이유로 극단을 세우게 됐나?

△ 퍼포머 박주희


퍼포머 박주희(이하:박)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 공감’이라는 인권단체 산하에 있는 극단이다. 흔히 운동이라고 하면 거리에 나가 으쌰으쌰하는 걸 많이 생각하는데, 우리는 좀 더 대중적이고 친숙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장애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권운동을 연극(대중예술)으로 해보자’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됐고.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장애여성에 대해 좀 더 편하게 또 더 깊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특히 창립 초반에 장애여성의 몸으로 연극을 한다는 데에 있어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지금도 정기공연 할 때 즈음 되면 많이들 관심을 가져 주신다. 장애여성들이 기획, 연출에서부터 연기까지 모두 소화해 내니 신기해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인터뷰 후에 나온 기사를 보면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동정적인 시선이랄까. 우리가 연극을 비롯한 여러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그 활동 자체가 동정적으로 비춰질 땐 난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뷰도 신문사나 방송국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내부적으로 골라서 한다.

‘춤추는 허리’에는 비 장애여성들도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장애여성 인권 문제에 의식이 있는 비 장애여성들이다. 실제로 연극 무대에선 비 장애여성이 장애여성 역을 맡기도 하고 장애여성이 비 장애여성 역을 맡기도 한다. 우리 극단은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해서 장애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 연극을 하고 싶다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극단이고. 따라서 비 장애여성과 장애여성이 같이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여성의 삶은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것이니까 연출만큼은 우리 안에서 하려고 한다.

장애여성 극단인 만큼 극단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연습장소가 가장 큰 문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동 수단이 편리해야 하고 연습 장소가 지하철역에 근접해 있을수록 좋다. 엘리베이터도 있어야 하고……. 대학로 같은 곳이 공연 연습할 때는 많은 데 계단이 많아서 남자 직원들이 일일이 배우들을 들어서 무대로 이동시켜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곳을 원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보조 하시는 분이나 극단 전체적으로 실무인력이 부족하다는 것, 전문적인 연극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 등이 있다. 또 창립한 지 6년이나 됐는데도 장애여성들이 하기 때문에 여기를 아마추어 동호회 정도로 보는 시선 역시 어려움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춤추는 허리' 연습 장면

김 여성의 몸이라면 S라인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장애여성의 허리는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그런 일그러짐에서 줄 수 있는 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연기 자체의 다양함과 깊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도 어떤 장애를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허리의 휘어짐이 다 다르다. 그만큼 배우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녹아든 경험도 다 다르다.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얻게 된 삶의 경험으로 더 진실 되고 강렬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연기는 어떤 뛰어난 배우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거라 생각한다. 만들어진 연기가 아니라 진실에 의해서 빚어진 연기가 나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한 운동인 만큼 장애여성들의 인권 신장에도 남다른 성과를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춤추는 허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여성들이 함께하면서 본인들 스스로 변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타의에 의해 끌려갔던 나의 삶이 자의와 당당함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나다’라는 인간으로서의 주인됨을 발견했다는 게 가장 큰 성과였다고 평가한다. 앞으로도 장애여성들 자신이 순종과 순응, 보호의 껍질을 깨고 사회에 당당히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내보이게 하기 위해 주인됨을 깨닫게 하는 방향으로 극단을 끌고 갈 생각이다. 장애여성에 대한 대중들의 의식을 깨우게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