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유쾌한 노래 가락이 흘러나오고 떠들썩한 대화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화개장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그 곳에 한번 와보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화개장터는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떠난 흔적이 맴도는 슬픈 곳이기도 합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는 바로 그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화개장터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옥화는 아들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을 없애기 위해 절에 보냈다가 장터 날에만 집에 돌아오게 하죠.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성기에게 마른가지 불붙듯 타오르는 감정을 가지게 한 이가 있으니 바로 장터에 잠깐 머물게 된 체장수 영감의 딸 계연입니다. 수줍은, 때론 과감한 사랑을 나누던 이들을 눈치 챈 옥화는 결혼을 통한 성기의 정착을 꿈꾸죠. 그러나 옥화가 체장수 영감과의 대화를 통해 계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성기는 사경을 헤매고,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던 옥화는 마지막이다 싶어 타고난 역마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죠. 오히려 성기는 이를 통해 자신이 받아들어야 할 운명의 힘을 느낀 것일까요. 하루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옥화에게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주” 

그렇게 아버지가 있는 강원도를 외면하고 계연이 떠난 구례마저 등지며 제3의 길을 선택한 성기는 육자배기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엽니다. 남도 지방의 대표적 민요 중 하나인 육자배기는 느리고 서정적인 가락으로 한의 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 소리입니다. 보기 드문 여섯 박으로 이루어진 이 민요는 ‘임 그리워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드냐’며 ‘억센 장마로도 못 끌’ 정도의 그리움을 매우 느리면서도 구성진 소리로 한스럽게 토해내죠. 이렇게 다른 민요와 달리 신명나는 소리 하나 없는 육자배기는 연거푸 흘러내리고 꺾이는 소리로 구성돼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전라도 사람들은 육자배기로 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랍니다.

△ KBS TV 문학관 '역마' 속 성기의 떠나는 모습

그러니 실연의 아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온 성기로서는 결코 눈물 없이 부를 수 없는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기는 마치 즐거운 양 콧노래로 소리를 뽑아내죠. 자신이 견뎌야 할 운명의 고난이 어떤 것인지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한스러운 나날들을 풀어내 듯 육자배기의 가락을 애절하게 부르던 성기의 뒷모습이 슬프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