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 범위 둘러싼 여야 갈등, 조속히 합치돼야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정당간 입장차로 인해 1년이 다되도록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재외국민 투표권’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6월,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 확인 소송이 제기됐었고 이에 헌법재판소(이하:헌재)는 “국내에 거주하는 것을 선거 요건으로 규정한 현행 공직선거법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거주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지금껏 이방인으로만 치부돼 오던 재외국민에게도 주권자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다만 헌재는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일정기간 효력을 유지 또는 중지시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오는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을 마련하도록 충분한 준비기간을 줬다.
 
헌재 판결 후 1년, 정치권 다툼으로 주춤
그러나 판결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치권의 갈등으로 개정법의 방향조차 명확히 설정되지 않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이슈가 바로 ‘투표권 인정 범위’이다.

이러한 논란은 헌재 판결 후 열린 재외국민 선거관련 공청회가 그 발단이 됐다. 재외국민 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 측은 “단기체류자와 영주권자는 체류 기간의 정도만 차이 날 뿐 모두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고 주장한 반면, 통합민주당은 단기체류자들에게 먼저 투표권을 부여한 후 순차적으로 영주권자에게도 허용해야한다는 입장차를 보였다.

통합민주당 김성곤 의원 측은 “모든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은 지나친 예산을 필요로 한다”며 “귀화를 목적으로 체류할 가능성이 큰 영주권자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한 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공청회 후에도 이렇다 할 토론의 장이 마련되지 못해 현재까지도 양측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투표권 인정 범위에 따라 달라질 투표층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통합민주당 이승희 의원은 “헌재 결정 이후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하고 있다”는 비판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지지층의 연령대가 다른 양 정당이 자신에게 유리한 재외국민 투표층을 확보함으로써 선거의 판세를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유불리 탈피한 개정안 시급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0월 재외국민 투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투표권을 확대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투표권 허용 범위에 대한 갈등으로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현재로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질 여유가 없는 상태. 각 정당간의 ‘자존심’ 대결로 치달은 정치권의 논란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무색해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재외국민들은 ‘정당의 이익’이 아닌 ‘재외국민’을 위한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재외동포재단 이구홍 이사장은 “국회에서 자기들의 유불리 때문에 조속한 개정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며 재외국민을 주권자로 인정한 헌재의 판결 의도에 걸맞는 논의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해외 단기 체류자 1백15만 명, 여기에 영주권까지 합칠 경우 2백90만 명에 달하는 재외국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을 위한 정책 검토기간은 이제 약 6개월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