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한국 연극이 올해로 100돌을 맞았다. 이 말에 혹자는 ‘한국 연극이 생긴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극이란 △가면극 △판소리 △탈춤 등 야외 상설 무대에서 비정형적으로 계승돼오던 전통극 형식과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100주년은 새로운 외국 형식을 도입한 최초의 신(新)연극 ’은세계’가 상연된 것을 기점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연극 문화의 수입과 동시에 시작된 한국 신연극 100년사는 서구 연극의 절대적인 영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 근대화의 물결로부터 시작된 한국 연극사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한국 연극사에 있어 서구 연극 형식을 최초로 무대 위에 올린 이인직의 ‘은세계’가 원각사에서 상연됐다. 한양여대 연극영화과의 김성희 교수는 “은세계는 1인 1역의 형식, 실내 무대 상연이라는 점에서 서구 형식을 따온 최초의 근대극이라 평가 받는다”고 말하면서 “일본을 통한 서구화 역시 한국 연극 100년의 시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라 강조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서구적 연극 형식과 구파(일본 전통극인 가부키)가 혼합된 신파 형식의 연극이 주로 상연됐는데 이는 서구 형식을 실연할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본의 연극 발달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신파극이 주류를 형성하던 1910년대, 연극계에서는 구극을 벗어던지고 새 시대에 걸맞은 소재와 형식으로 이뤄진 연극으로의 개량이 필요하다는 담론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연극 기반을 갖추지 못한 한국 근대극은 일본 창작극을 그대로 들여와 상연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다. 이에 1920년대 대표 극단인 극예술협회와 토월회가 기존의 신파극과는 다른 극형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진정한 신극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다. 기존의 신파극에서 벗어난 서구의 연극 형태를 국내에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들은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이하:극연)가 신극 운동을 주도하면서 고골리의 ‘검찰관’을 제1회 연극으로 상연했는데 이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후 공연된 ‘해전’이나 카이젤의 ‘우정’은 미숙한 표현주의 기법으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당시 연극계는 ‘연극의 전통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외국극을 무리하게 도입했다’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에 대한 끊임없는 자성의 시간을 보낸 극연은 이후 유치진의 순수 창작극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연극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게 된다.

한국 연극계, 번역극으로 범람하다
한국 사회가 해방공간을 맞이하는 1940년대,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에도 연극계는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건설할 이념을 제시하는 등 생산적인 연극 활동을 전개했고 이는 많은 희곡 창작물을 낳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한국 전쟁의 발발은 연극의 침체기를 낳았고 결국 본격적인 사회 정비 체제에 들어서는 1960년대까지 우리 연극은 암흑기를 겪게 된다.

그렇게 한국 전쟁이 만든 폐허를 극복해 가던 1960년대, 연극계는 개화기 이후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서구식 사실주의를 계속 이어가며 침체기를 극복해 나간다. 동시에 정치적 탄압이 심했던 1970년대 중반에는 모순된 한국 사회 현상을 고발하기 위한 부조리극이 당시 민주 운동가들의 정신적 자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 속에서 연극계는 예술적 목표보다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공연 무대는 예술의 실험 정신이 담긴 연극보다 흥행이 보장된 번역극으로 채워졌다. 이런 흐름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세익스피어 작품 △입센과 브레히트 등 이미 작품성을 검증받은 고전 작품들을 무분별하게 무대에 올리는 결과를 낳았지만 1990년대 이르면서는 새로운 시도도 엿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연출가의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된 고전 작품들이 한국 연극계의 흐름을 주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극평론가협회의  김형기 회장은 “극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언어 중심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몸짓을 중심으로 하는 행위 예술적 측면의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으로 트렌드가 변모하며 현재 연극계의 모습이 갖춰지게 됐다”고 증언한다.

‘한국’ 연극의 새 시대를 논하다
그러나 한국 연극사의 흐름에서 점차 높아진 번역극의 비중은 한국 연극계의 위기를 촉발시킨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연극계는 고급 예술로서 비영리적인 목적을 취하는 연극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 그러나 지속적인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관객층이 제대로 형성돼야 한다는 게 인켈아트홀 김병찬 대표의 의견이다. 검증된 번역극이 주로 올라오는 현 연극계의 모습은 소위 관객 몰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형성된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수준 높은 관객층을 형성할 양질의 순수 한국 창작물들이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현 위기를 타파할 중요한 해결책으로 꼽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연극관련학과가 50여개 넘게 개설돼 있는 우리나라의 연극 교육계는 연극을 ‘만드는’ 기술적 기반을 탄탄히 했다”고 말하면서도 “연출가의 깊은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연극’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노력이 부족했었다”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김 회장은 “현재 100년의 연극사에도 이렇다 할 순수 한국 창작극이 부족한 것은 이를 마련할 희곡 작품의 풍토가 척박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혀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국 연극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순수 한국 창작물이 많이 생산돼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뤄야 할 것이 더 많은 우리 연극 100년. 새로운 외국 형식의 적극적 수용이 앞으로의 한국 연극 100년에 자양분이 될지 독이 될지는 연극인들과 관객들의 소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세기를 뛰어온 한국 연극은 또 다시,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