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조선희 원장

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한국 최초 영화 아카이브(Archive: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둔 정보 창고) 구축, 한국 최초 영화 박물관 설립 그리고 한국 최초 미개봉 영화 전격 공개. 영상에 관해서는 뭐든지 ‘한국 최초’인 한국영상자료원은 조선희 원장을 통해 이제 한국 영화 문화를 절정기에 올릴 역사의 시작에 서있다. 개관식 준비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낯빛이었지만 영상을 말하는 두 눈만큼은 날카롭게 빛나던 그녀를 만나 영상 보존이 가지는 예술사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조선희 원장

문수영 기자(이하:문)  영상자료원 원장직을 맡기 전에는 소설가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원장직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조선희 원장(이하:조)  한겨레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 생활을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 분야에서 활동했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씨네21의 편집장까지 맡게 됐는데 소설이 쓰고 싶어 19년의 기자생활 끝에 소설가로 6년 동안 활동했다. 그러다 영상자료원의 원장직 권유가 들어오면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옛 경력을 바탕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문 조 원장이 원장직을 맡기 이전까지 영상 자료원은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조 이전까지는 서초 예술의 전당에서 임대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또 낙후된 시설과 부족한 예산으로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런 와중에 인사 파동으로 원장직이 공석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작년 원장직을 맡게 되고 아카이브 전용 빌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설을 갖추게 됐다.
영화 아카이브라면 △필름 수장고 △라이브러리 △영화 박물관 △씨네마테크의 네 가지 시설로 구성돼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들이 모두 갖춰진 이상적 구조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 또 이를 유지하고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데 필요한 예산도 확보되면서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중국, 일본에도 이미 존재하는 영화 아카이브가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서야 제대로 시설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의 영상 보존 작업이 유독 늦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1974년, 영상자료원 그러니까 옛 이름으로 필름 수장고가 생기기 전까지는 필름을 보관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필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리고 옛 영화인들은 딴따라라고 불릴 정도로 영화에 대한 인식은 하나의 흥행 산업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문화 예술의 창조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적었다. 영화가 청소년에게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생각되면서 저질오락이라는 인식까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삶의 질이 중시되고 즐거움이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이젠 고급인력이 영화 제작에 뛰어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니까……. 필름 수장고가 만들어지고 의무 납본제라 해서 영화 필름을 영상자료원에 반드시 제출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 또한 영상 자료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상자료의 보존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영화 또한 한 시대의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이 담긴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영화의 기록들이 쌓이면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진술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책들이 도서관에 보관되 듯 영상도 보관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 영상물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고 문화·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영상은 국가적으로 관리할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에 따라 아카이브도 그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천편의 영상을 다루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소위 ‘영화 편식’에 길들여진 젊은 층에게 한마디 한다면?

  요즘 젊은층들은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상업영화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보약이니까 쓰더라도 먹어라’라는 식으로 고전 영화를 보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모든 고전에는 지금의 생활 리듬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임에도 지금의 문화 트렌드들을 초월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이것은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저 옛날 영화, 오래된 흑백 영화가 다 똑같아 보일지라도 그 중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같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