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 '제우스와 이오'

남녀 한 쌍이 만나 평생을 같이한다는 서약을 하는 결혼은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요즘을 보면 결혼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이 ‘가벼움’이 자유분방해진 현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18세기의 풍자화가 호가스의 연작그림 ‘Marriage a-la-mode’를 보면 말입니다. 6개의 연작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당시 성행하던 정략결혼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호가스가 6개의 그림들 곳곳에 집어넣은 은유적 표현들로 풍자적 주제는 더욱 탄탄하게 표현되고 있죠.

이런 호가스의 기지는 4번째 그림 ‘The toilette’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림 속에서 내연남이 그린 초상화를 방에 걸어놓는 신부와 이를 방치하는 남편의 모습은 애정이라곤 온데간데 없어진 두 부부의 관계를 보여주죠. 그 뒤로 걸려있는 그림이 바로 코레조의 ‘Jupiter and Io’. 헤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구름으로 변신한 제우스를 이오가 살포시 안고 있는 그림인데요, 이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가 아내 헤라를 두고 이오와 바람피운 이야기를 그림 속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호가스보다 2세기 앞선 시대를 산 이탈리아 화가 코레조는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다룬 작가로 유명합니다. ‘Jupiter and Io’도 그런 코레조의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구름으로 변한 제우스를 안고 있는 이오의 황홀해 하는 표정은 가볍게 칠한 물감의 분위기와 어울려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한 당시 화법 경향이었던 엄격하고 절제된 선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명암처리로 선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에로틱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죠. 홍익대 미술교육원의 주태석 원장은 “‘The toilette’은 이런 화풍적 특성 이외에도 좌측 상단에 걸린 성직자 초상과의 대비효과를 통해 그림 내 욕망의 상징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불륜에 호가스는 일침을 놓고 싶었던 건지 가장 난잡한 모습을 보여주는 4번째 그림에 이런 제목을 붙여놓았군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화장실’을 뜻하는 ‘The toilette’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