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사고의 틀의 깬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언제나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던 문제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입장이란 오직 인간들만의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가로등을 설치하면 동물들이 밤잠을 설칠 거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배설물이 땅에게는 다시 ‘밥’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나무는 집 밖이 아닌 집 안에서 지붕을 뚫고 자라나는 한 식구가 되기도 한다. 경남 산청군에 위치한 안솔기 마을은 16가구 모두가 동식물을 위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한다. 자연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친환경적 자재로 집을 짓고, 땅에는 집을 짓다 남은 톱밥이 자연스럽게 깔려있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날아온 소나무 씨들이 아기 소나무로 자라고 있는 자연의 신비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전해 온 생태마을의 모습은 다소 다르다.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안락한 전원생활의 측면만 부각돼 왔다. 실제로 지난 2002년에는 어느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안솔기 마을에 대한 방송을 내 보낸 후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을 주민인 최세훈씨는 “방송의 특성상 유토피아 같은 모습만 부각시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어요. 미리 연락도 취하지 않고 찾아온 관광객들에 의해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가 심각했죠”라고 씁쓸해했다.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순식간에 관광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때부터 안솔기 마을은 모든 공중파 취재요청을 거절했고, 마을 입구에 있던 이정표마저 없앴다.

우리가 말해야하는 환경은 아름다운 풍경과 같은 환상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환경적’, ‘생태적’이라는 단어를 듣고 무작정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껍데기 뿐 아니라 생활양식 하나하나 자연을 위해 양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공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