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중심의 엘리트 체육, 효율성 따지느라 선수 인권은 뒷전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올림픽 종합 7위. 한국은 미국, 호주, 독일 등 체육 선진국과 어깨를 견주는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메달의 개수에서 비롯된 단순 지표를 통해 진정한 스포츠 경쟁력을 갖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난 달 2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비인기종목 등 엘리트 체육 진흥 대책’과 관련한 계획을 발표했다. 비인기종목에 대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연간 1백 80일인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 일수를 2백 10일로 확대하고, 국가대표 전임지도자의 연봉을 높이겠다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나치게 높은 훈련 강도, 국가대표 위주의 지원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체육 편중 정책에 가속이 붙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엘리트 체육은 말 그대로 소수의 엘리트를 중심으로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스포츠 육성 방식이다. △엘리트 체육 △학교 체육 △생활 체육 등 다양한 개념이 어우러져 스포츠를 구성하고 있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엘리트 체육’이 제1의 육성 방안으로서 소수 국가대표 중심의 스포츠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마다 특성화 된 ‘운동부’와 올림픽 때마다 빛을 발하는 ‘태릉선수촌’은 우리나라가 엘리트 체육에 얼마나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는 훈련 기계? 폭력, 학습권 침해 심각
그러나 엘리트 체육이 선수의 흥미보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시행되다 보니 다양한 인권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사실. 성과위주의 훈련 속에서 선수들은 자연스레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기보다는 메달 사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학생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운동선수의 75%가 신체적 폭력을, 74%가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지난 3월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감독의 폭행, 지난 7월 연대 농구부 폭행 논란 등 언론에 폭로된 사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수많은 폭력들이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한 명목으로 자행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선수들이 학생의 신분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학습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훈련을 받느라 수업을 빼먹는 건 다반사고 수능은 형식적인 시험에 불과한 상황에서 학업과 운동을 동시에 병행하겠다는 선수가 ‘유별나게’ 비춰질 정도이다. 일례로 지난 2000년 여자 수영의 유망주 장희진 선수가 기말고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하자 올림픽 출전권이 박탈됐었다. “수영선수가 꼭 운동만 하라는 법은 없다. 남들과 달리 공부와 수영 둘 다 잘하고 싶었다”고 심경을 밝혔던 장 선수는 결국 기말고사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오직 훈련에만 치중, 은퇴 후 사회 적응 어려워
이처럼 모든 노력을 운동에만 집중시키는 엘리트 체육은 선수들의 진로를 획일화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부상을 당해 불가피한 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거나 프로 선수로서 발탁되지 못할 대다수의 선수들을 위한 제2의 진로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인기종목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핸드볼 특기자로 우리학교에 입학한 익명의 한 학우는 “핸드볼과 같은 비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실업팀이 4~5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잘 구축돼 있어 실업팀이 많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여유롭게 미래를 고민해나갈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해당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성공한 선수라 하더라도 엘리트 체육의 폐해로부터 해방되기는 쉽지 않다. 오직 메달 획득만을 위해 훈련받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은퇴 후에는 추구해야 할 목표가 사라지면서 밀려오는 상실감이 적지 않기 때문. 또한 운동 외의 다른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에게 사회에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체육 선진국의 대중적 ‘생활 체육’ 본받아야
외국은 태릉선수촌과 같은 기관 없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운동을 한 가지 이상 선택해 취미로 삼게 하는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엘리트 선수를 육성한다. 본인이 흥미나 재능을 보일 경우에만 상위 단계로 도약하며, 선수로 육성된 이들은 이후에 다시 생활체육 지도자로 환원되는 순환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 국민을 위한 체육이 마련되다 보니 지도자 수요도 충분하고 운동선수도 정규 수업을 받기 때문에 본인이 원할 경우 얼마든지 운동이외의 분야에서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농부나 경찰, 의사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화체육관광부 생활 체육과 김구환 관계자는 “유럽과 같은 경우에는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의 토대 위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육성된다”면서 “이와 같은 방식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생활 체육이라는 개념은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두 개념이 별개의 영역에서 시행되고 있다보니 생활 체육이 엘리트 체육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영향력이 충분치 못한 것이 문제. 현재 우리나라는 대한체육협회가 엘리트 체육을, 국민생활체육협회가 생활 체육을 총괄하면서 담당 기관 자체가 분리돼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국민생활체육협회 김연수 국제 업무 담당자는 “일본에서는 일본체육협회가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을 통틀어 담당하지만 우리나라는 두 개의 단체로 나눠져 있어 각 종목별로 등록하는 선수 대상부터가 다르다”고 말해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관계가 취약함을 시사했다.

메달 욕심 버리고 새로운 길 모색할 때 
사격 선수 이은철씨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정규 수업을 모두 받으면서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거뒀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현재 실리콘벨리테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이 씨의 사례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운동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해 온 엘리트 체육의 행태가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는 10년간 ‘노메달’을 각오하더라도 선수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외칠 수 있는 국민은 몇이나 될까. 올림픽 종합 순위로 엘리트 체육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가 대표의 훈련 일 수를 늘리는 것보다 전 국민적인 메달 욕심을 버리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