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현 편집장 (kjhjhj1255@skku.edu)

역대 최다 메달 획득, 최고의 성적, 무수한 세계 신기록 갱신, 아시아 2위 등극… 올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과 뿌듯함을 안겨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목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얻어내기도 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등 지루할 날이 없는 17일을 선사한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6개월 간 쇠고기 파동에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 치솟는 물가까지 온갖 역경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국민들의 어깨도 오랜만에 펴졌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든 하루여도 국경너머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금 소식은 활짝 웃음꽃이 피게 했다.

스포츠의 힘은 이렇게 막강하다. 전두환 정권이 당시 들끓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3S정책(Screen, Sports, Sex)을 괜히 시행했던 게 아니다. 국민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즐거운 마음으로 단합하게 하는 데 스포츠만큼 더한 오락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국위선양과 국민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스포츠 성장은 계속 이어졌고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 스포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개개인의 취향과 흥미를 고려한 생활 속의 스포츠로서가 아닌, 위업적 목적을 가진 국가사업이 되면서 ‘1등 위주’의 스파르타식 체육이 만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이라고 불리며 적지 않은 폐해를 낳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금메달이 아니면 안된다’는 사고. 금메달이 아니면, 세계 1위가 아니면 그저 그런 성적이 돼버리는 나라, 동메달을 따고 억울해서 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하던 어느 외국인의 우스갯소리가 우리 스포츠계의 슬픈 현실이다. 유도60㎏ 결승전 당시, 최민호 선수에게 진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 선수가 환한 미소와 함께 최 선수를 꼭 안아주던 모습이 외국인의 눈엔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놀라운 스포츠맨십의 표본으로 회자된다.

우수한 자질을 가진 선수 위주의 1등을 위한 선택과 집중, 이러한 전략은 당장에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가경쟁력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손실로 이어진다. 최근의 한 일간지보도에 따르면 2003년 이후 대부분의 종목에서 출전가능한 선수의 수가 급감했다. 이는 비인기종목에서 특히 심한데 육상은 21%, 레슬링은 16%, 유도는 7%, 양궁은 6%가 줄었다. 30대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를 이루는 여자핸드볼도 중고교 선수가 매년 10%씩 줄어 유망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4년 뒤, 8년 뒤의 올림픽을 책임질 체육계의 꿈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 등이 그 이유로 꼽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미래의 메달리스트 산실인 학교 운동부가 여전히 ‘헝그리 정신’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분위기가 개성과 개인의 행복, 흥미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수많은 운동부는 오로지 ‘운동만을’ 고집하고 스코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 1등을 길러내기 위한 스파르타식 훈련이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가 결국엔 운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스포츠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의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는 개인의 자율성과 취미를 우선적인 바탕으로 깐 후 스스로가 심화된 훈련을 원한다면 이를 뒷받침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며 주체적인 삶 속에 스포츠가 일부분으로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국위선양이란 목적으로 체육인의 사적인 흥미나 공부, 취미 등이 묻혀버리다가는 우리나라 올림픽 선수의 씨가 마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 4년 후 열릴 런던 올림픽에서는 의사인 태권도 선수, 편의점 알바생인 수영 선수, 과학자의 꿈을 가진 배드민턴 선수를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