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선영 기자 (sun3771@skku.edu)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 우리는 지난 ‘회갑’의 역사동안 산전수전을 숱하게 겪어왔지만 온 국민의 성원 속에서 마냥 축하받는 잔치일 순 없었다.

오히려 올해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던 국보 1호의 숭례문이 불타고, 촛불이 넘실대는 그야말로 ‘화(火)’가 많은 한 해인 듯 했다. 다가올 민족의 대 명절 추석에도 풍요로운 잔칫상은 커녕 눈물과 한숨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치솟는 물가와 성난 민심에 대한민국은 이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여기에 정부수립 60년을 ‘건국’이라 칭하면서 더욱 축복받을 수 없는 한 해가 돼버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정부는 올해를 건국 60년으로 지정하고, 이미 60일 연속강연 등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진행 중에 있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8·15 기념식을 ‘광복절 쫛쫛주년 겸 정부수립 쫛쫛주년’으로 치러온 것에 비해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이라는 이름을 보란 듯이 내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919년 임시정부수립을 건국 기점으로 인정하는 근현대사의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수립해야 했던 1948년 반쪽짜리 정부를 진정한 건국으로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이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에도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일제시기 친일 행위자들을 반공투쟁의 애국자로 둔갑시키고, 정부수립 이후 ‘근대화’ 의 공로자로 인정하는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 이로 인해 야당 대표들은 정부의 공식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채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었다.

이러한 논란은 광복절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지난달 29일에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설치예술제’에서 선보인 작품이 철거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 쓰여진 ‘건국 60년’이라는 글자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가져온 것이다. 또 지난달에는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실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행위가 발생하지 않아 헌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되긴 했으나 55개 시민단체들은 ‘규정’이 아니라 ‘행위’를 문제 삼아 다시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이처럼 이번 건국논쟁은 위헌의 소지가 있을 정도의 심각한 사건임을 각인시켜준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기념행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예산과 기획으로 무장한 국가적 사업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건국 60주년’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생웹진 바이트(www.i-bait.com)가 지난 6~9일까지 수도권 소재 대학생 5백명을 대상으로 ‘건국 60주년’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대학생의 52.6%가 ‘건국도 광복과 함께 기념해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임시 정부에 있으므로 건국절로 기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답변은 12.5%에 그쳤다. 건국의 의미에 대해서는 ‘미군정에 의한 불완전한 건국’(48.2%),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으로 분단이 고착화된 계기’(21.8%)라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너무 지나친 반응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MB정부가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율 회복을 위해 ‘건국 60주년’을 의도적으로 힘주어 강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정부 인사 등과 연일 만찬을 가지며 “집토끼를 먼저 잡아야 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모습이 과연 소통을 강조하는 ‘국민통합 정치’인지 참담할 뿐이다.

뒤집어진 태극기로 입방아에 오른 데 이어, 얼마 전에는 정부가 발간한 건국 60년 홍보책자<대한민국 성공역사는 계속된다>에서도 태극기의 감괘(오른쪽 위쪽)와 이괘(왼쪽 아래)의 위치가 뒤바뀌어 논란에 휩싸였다. 진정 대한민국의 광복과 건국을 기리고 싶다면 태극기 모양부터 제대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눈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분단 전후 백범이 가장 즐겨 썼던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다. 그는 눈보라치는 조국의 위기 속에서 일신의 안위나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보다도 후손들에게 남겨줄 역사를 강조했다. 서로 머리가 되기 위해 헤게모니 싸움을 일삼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 발이 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던 백범, 그의 소신이 더욱 그리워지는 올해다.